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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Aug 22. 2022

1킬로그램의 법칙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단 하나, 하지만 가장 어려운 그것에 대하여

몸무게는 정직하다. 더 세밀하게 들어가면 골격근량과 체지방량은 정직하다. 오늘 왜 이렇게 줄었냐 하면(이틀 전보다 1킬로그램이 적다) 스마트워치에 답이 있다. 체지방량이 늘고 골격근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계속 하지 않고 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실은 약 2주 동안 평소 하던 땀 흘릴 정도의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근력 손실을 의미하며, 그것은 탄력 감소와 장기적인 체중 증가로 이어진다. 지금 당장은 몸무게 1~2킬로그램 빠지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지만 늘어난 체지방량은 기초대사량을 줄이고, 이로 인해 먹은 대로 살이 찌는, 심하면 먹은 것보다 살이 쉽게 찌는 체질로 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체중에 현혹되지 말라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지금 위험한 변화의 시작점에 와 있다. 


내일의 체중은 무엇일까? 오늘 먹은 걸로 보면 그렇게 과식은 하지 않았다. 먹은 양은 나쁘지 않다. 물론 좋지도 않다. 저녁에 비빔면과 밥 반 공기를 김치와 먹었기 때문이다. 탄수화물과 나트륨. 다이어트에 최강 적이다. 아침 메뉴로 먹은 매운 닭볶음탕은 아이들이 싫어하는 수준의 싱거움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먹었다. 싱겁다고 많이 먹으면 짜다고 덜 먹을 때보다 섭취 나트륨 양이 많아진다. 그것이 위험하다. 적당히 간이 있으면 맛있다고 더 먹으니, 결국 짜게 조금 먹는 게 남는 장사일 수도 있다. 


나에게 나트륨 줄이기는 탄수화물 줄이기만큼 어렵다. 나의 탄수화물은 당분이 아닌 나트륨을 동반한다. 왜냐. 단것보다 달지 않은 밥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밥은 나에게 김치의 다른 말이다. 나의 밥은 언제나 김치와 국을 대동한다. 식이조절 다이어트가 나에게 불가능한 이유다. 밥을 끊는 건 숨을 참으라는 소리처럼 절망적으로 들린다. 


가끔 인바디 어플에서 체중 감량에 성공해서 바디프로필 사진을 찍은 회원의 성공기를 볼 때가 있다.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을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병행해서 체중 감량에 성공한 그들의 이야기는 내용은 익숙한데 볼 때마다 감탄한다. 나는 그런대로 운동을 하는 편이라 꾸준한 운동 스토리에 그다지 감동을 받지는 않는다. 내가 감동받고 존경심을 품는 부분은 식단을 바꾸고 그걸 이어간 식이요법 성공 스토리다. 새벽 운동 전이나 후에 단백질 셰이크를 먹고, 점심은 닭가슴살 샐러드, 저녁엔 토마토와 삶은 계란(중 흰자만??) 두 개. 치팅데이라 불리는 주말엔 라면에 대패삼겹살이라도 먹는 줄 알았는데, 평소 먹는 식단을 그대로 유지하되 양만 (최대) 두 배로 먹는다고. 와----. 나는 단언컨대 하루도 못 할 것 같다. 


어느 날은 한 끼도 나트륨 없는 식단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에게 물었다. 

“만약 너에게 1억 원을 준다면 10킬로그램을 빼겠니?”

“내가 왜?”

단박에 나온 대답에 잠시 나는 자아분열증을 겪었다. 아니, 고민이라도 하고 대답을 해, 좀. 정말 1억 원이라는 돈이 그렇게 시시해? 그럼 10억 원이라면?

“…. 시도는 해볼게. 하지만 장담은 못 해. 하루는 김치를 안 먹을 수 있지만 이틀은 힘들거든….”


나는 나에게 포기했다. 나의 나트륨 사랑은 돈 따위 이겨버리는 끔찍한 녀석이다. 

이런 나를 나는 잘 안다. 그래서 체중 감량이 1년 동안 단 1킬로그램도 안 될 것을 안다.(1킬로그램이 늘지 않으면 정말 잘 관리한 거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이 순간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결혼 전 몸무게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1킬로그램을 뺄 거라는 희망. 


1킬로그램. 티도 안 나는 1킬로그램을 뭐하러 ‘희망’이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써가며 빼려고 하냐고 타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꾸준함이 있어야만 감량이 되는 다이어트의 기본 원칙을 내가 실행하는 걸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다이어트는 습관을 바꾸는 가장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가장 어려운 행위이다. 늘 먹던 대로 먹고, 늘 움직이는 대로 움직여서 변화 없는 패턴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체중이 급격이 늘거나 급격히 빠지는 현상은 무언가 몸에 탈이 나서 질병이 생겼다는 신호다. 그렇지 않고 보통의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이 자신의 오랜 관성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습관을 장착하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물론 새로운 습관이라는 옷을 입어볼 수는 있다. 입는 순간에 설레고 새롭고 기분도 좋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달리기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한 이틀은 얼마나 행복하던가. 하지만 매일 그 옷을 입는 일이 즐겁기는커녕 힘들도 괴롭다면? 


나는 지금의 패턴에 안주해서 새로운, 하지만 불편한 옷을 입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이전의 관성을 끊고 조금 더 바람직한 관성을 내 몸에 장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매순간 확인한다면 희열을 느낄 것 같다. 나를 내가 새롭게 인정하고 싶다. 할 수 있다고. 뭐든 해낼 수 있다고. 각오하면 목표한 바를 이룰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재평가하고 싶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가끔 듣다 보면 고민 사연에도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중 하나가 왜 나는 결심은 하는데 실행은 못 하냐는 고민이다. 나 또한 그 사연의 주인공으로 빙의해서 스님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스님은 예의 그 시니컬한 스타일로 대답한다. “그냥 생긴 대로 살어!” 


흠, 그래도 좀 희망적인 말씀을 해주시지…, 하는 내게 “고쳐서 뭐 하게? 못 고친다.” 하는 스님의 말씀은 위안은 되지만 좀 답답하다. 그런데 그렇게 아끼고 아끼다가 “그래도 정말 고치고 싶다면….”라면서 비법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다. 3년을 노력하라고. 3년 동안 끊고 싶은 술을, 끊고 싶은 담배를, (나에 대입하면 끊고 싶은 밥과 김치를,) 끊는 데 성공하면 술을 안 마시는 사람으로,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으로, (밥과 김치를 안 먹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했다.(이승환의 <천일동안>이 이 순간 생각난다면 3년을 수학적으로 잘 이해한 것이다.)


그래, 방법은 있고,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방법을 알고도 실행하지 않는 내가 있을 뿐이다. 1킬로그램은 나에게 방법만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행도 하는 나를 의미한다. 목표한 대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입고 싶다. 살은 수단에 불과하다. 자신을 실험해 보기 가장 명쾌한 방법으로 체중을 선택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는데,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체중 변화다. 내가 먹은 대로, 움직이는 대로, 유지하는 대로 체중은 나에게 보여준다. 얼마나 정직한지 모른다. 그 정직함을 인정한 순간 몸을 신성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그 숭고한 몸과 계속 정직한 대화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얻을 것이다.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1킬로그램의 법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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