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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Oct 30. 2021

요가 수업 한 달째

잡념을 이기려는 집념의 한 시간을 보낸 뒤

그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내 몸 하나밖에 더 있어?

자아를 찾으려는 포도 단식은 못 할지라도 요가 수업을 받는 한 시간 동안만은 ‘마시고 내쉬고’에만 오롯이 집중해 볼 수 있지 않겠어?

마시고(흠------)

내쉬고(후------)

마시고(흠------)

내쉬고(후------)

좋아, 이 시간만은 머리를 비우고 호흡에만, 강사님이 지시하는 동작에만, 힘을 빼는 데만 집중해 보는 거야.     

요가 수업 한 달이 되는 오늘을 대하는 마음의 각오가 결연하다. 어쩐지 배꼽에 힘을 주고 싶다.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내밀고, 아참, 어깨도 내려야지. 요가매트를 오른 어깨에 걸치고 팔자걸음으로 의연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사뭇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그것처럼 비장하다.     


“안녕하세요.”

강사님께 다소곳이 인사를 하고 체온을 측정한 뒤 출석 일지에 이름을 적는다. 그 어느 때보다 매트를 까는 온몸이 진지하다. 상하좌우 사선이 되지 않게 구십 도! 그래그래. 이 정도면 잘 맞아.      


“꼬리뼈 바닥에 닿도록 자세 잡고, 양손 무릎. 마시는 숨에 양손 머리 위로 합장(흠-----), 내쉬는 숨에 가슴까지 아래로(후-----). 시작합니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흠----- 마시고

후----- 내쉬고

집중한다, 집중한다     


“마시는 숨에 고개 뒤로”(흠------, 삐걱, 왜 이렇게 목이 뻣뻣해)

“내쉬는 숨에 앞으로”(후------, 그래 천천히)

“다시 마시는 숨에 고개 뒤로”(흠-----, 안 돌아가네)

“내쉬는 숨에 앞으로”(-----, 앗 호흡 놓쳤다)

“마시는 숨에 고개 뒤로”(후--, 흠--------, 맞지?)

“내쉬는 숨에 앞으로”(후------, 그래 이거지, 집중해서 다시 마시면서 뒤로, 흠-----)

“이번엔 반대로”(헉, 반대? 흠—하--- 흠-----)     


어느새 고개 풀고, 손목 풀고, 허리도 풀고(아, 대체 허리는 어떻게 돌리는 거야, 나 허리 있는 거 맞아?), 구르기 시작.

“하나, 둘, 셋…열. 이번엔 다리 펴고 하나, 둘….”

흠-----, 하------

흠-----, 하------

흐음-----, 하------, 아이고 꼬리뼈야.

흐음음-----, 하—하—--, 왜 자꾸 오른쪽으로 몸이 가냐.

“… 일어나세요.”

쿵. 휴~  아, 이제 시작인데. 할 수 있어. 자, 마시고 내쉬고, 마쉬고 내쉬고. 집중해.     


“바르게 서고. 오른발로 중심 잡고, 왼발 앞으로, 왼 무릎 양손으로 잡고, 오른손 옆으로 펴고, 왼쪽 골반 열고…, 숨 쉬세요, 시선은 정면, 왼발 옆으로 펴고, … 숨 쉬세요, 집중…, 왼손 아니고 오른손….”

왼손 아니고 오른손? 흠-----, 하------

중심 흐트러지지 않는다, 않는다, 다, 다,

아고야, 쓰러진다, 흠------, 하------

집중 집중, 흠-----, 하-----     


“이번엔 반대.”

반대? 아, 한쪽이 아직 남았어? 흠--, 하--, 흠--, 하--, 왜 몸은 양쪽 대칭이냐고. 하나씩만 있으면 좀 좋아.

“왼발로 중심 잡고”(그래, 잡았어, 흠하, 흠하)

“오른발 앞으로”(어어억,,, 흔들려, 안 돼, 집중 집중)

“오른 무릎 잡고”(흠하, 흠하, 흔들리면 안 돼!)

“왼손 옆으로”(흠하, 흠하하, 하하하, 아무렇지도 않은 선생님 목소리 야속해요)

“오른쪽 골반 열고”(흠하하, 흐음하아, 샘, 골반은 왜 자꾸 열어요)

“시선 정면. 집중”(허벅지 터져요. 후아후아)

“숨 쉬세요”(허억허억, 샘, 숨이 안 쉬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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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를 돌돌 말아 겨우겨우 끈을 채운다. 비틀비틀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신고 한 발 한 발 허공에 발을 디디는 듯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집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몸을 패대기친다. 아, 힘든 싸움이었다. 밥은 뭐 먹지? 찬밥은 싫어. 뜨끈한 국물이 필요해. 콩나물국에 밥 넣고 푹푹 끓여 먹을까? 단백질도 필요해. 허벅지가 애썼잖아.


마시고 내쉬느라 운동 많이 한 배꼽이 요란하게도 점심시간 벨을 울린다. 내 몸은 내가 알지, 알아. 배고프다잖아. 어여 밥을 대령해 드리자. 콩나물국 냄비에 불을 켜면서도 흠-----, 하-----. 두부를 부치면서도 흠-----, 하-----.


샘, 이렇게 호흡에 집중하는 거 맞나요? 운동하고 바로 밥 먹어도 호흡하며 먹으면 공기 중으로 에너지가 다 발산되는 거지요? 배둘레에 쌓이는 거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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