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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Oct 24. 2021

첫 브런치북 발간 24시간 뒤

어제 응모한 브런치북에 반응이 올지 궁금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6시 30분. 핸드폰 충전이 되는 동안 눈은 감고 의식은 떠 있는 상태로 얼마간 있었다. 은근히 알림이 있기를 바라면서. 더 있으면 산책 나갈 타이밍까지 놓친다는 생각에 일어나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알림은 와 있었다. 구독한 다른 작가가 새 글을 올렸다는 몇 개의 알림. 오늘이 응모 마감날이니만큼 막판 스퍼트를 올리나 보다. 나는 내 글에 대한 반응이 없음에 애써 무심한 척 양치를 하고 옷을 입은 다음 버즈를 챙겨서 세 겹 옷과 모자와 마스크 속에 나를 감추고 밖으로 나온다.     


생각보다 씩씩하게 걸어지지가 않았다. 대신 느릿한 걸음 하나하나에 브런치라는 공간이 주는 따뜻함을 새겼다. 사람 많은 공간에 있다고 외로움이 없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이사와 퇴사로 인해 동료도 없고 이웃도 사귀지 못한 지금, 여기의 일상이 문득 외로움을 가져다주는 걸 느꼈다. 의무의 인간관계일지언정 그 안에서도 마음의 교류는 있었고, 그 퍽퍽한 느낌에 일상이 많이 기댔음을 깨달았다.     


나는 누구인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마음 밑바닥에서 움트는 질문의 싹은 해답이라는 태양을 찾아 자신의 키를 키워 갔다. 내가 외면한 만큼 질문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온 마음을 차지하려 했다. 답을 줘야만 마음에 여유란 것이 생길 터였다.      


장학퀴즈처럼 정해진 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답을 찾기 위해 나만의 공식이 필요했고, 이전에 사용했던 식을 들여다보며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체크해야 했다. 나는 썼다, 나의 감정에 대해. 슬픔, 분노, 억울함, 측은함, 불안함에 대해. 나의 감정의 쓰레기들이 파일에 담겨 노트북으로 실려 갔다. 나는 썼다, 나의 하루하루를. 평범하기 그지없는 매일은 어제와 다른 특별한 오늘로 기록됐다.      


감정의 쓰레기를 한창 모으고 보니 폐기할 것과 재활용될 것으로 분리해서 보였다. 노안이 온 눈에 돋보기안경을 쓴 것처럼. 쓰레기를 치우니 질문으로 가득했던 마음에 빈틈이 조금은 생긴 모양이다. 일상을 기록하다 보니 회색빛이기만 했던 오늘이 맑고 파랗게 개인다. 지혜를 가렸던 구름이 감사함과 소중함을 의식하는 마음의 기류에 흩어진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나의 식은, 나의 답은 그것이었다. 내가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생이 다할 때까지 이어질 질문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내릴 답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하는 것. 무엇을 바라지 않고, 내일의 수단이 아니라 지금이 바로 그 목적인 것처럼, 성실히. 몇 개월간의 글쓰기는 나에게 이런 답을 주었다.      


이런 때에 브런치북 출판 지원 프로젝트 공고를 보았고,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 응모할 수 있다는 응모 자격을 보았다. 지금까지 썼던 몇 개의 글을 가지고 작가 지원을 했는데 ‘아쉽지만’으로 시작하는 탈락 알림을 보고 적잖이 실망을 했다. 어쩌지? 하는 순간 재수 심지어 오수까지 했다는 글을 보게 되었고, 이번에는 마음을 비우고 다른 글을 보충해서 지원했다. 실패 뒤 만난 합격 소식은 실망한 만큼 큰 기쁨을 주었다.      


여전히 나에 대한 소개글을 쓰는데 나를 어떻게 정의할지 고민이 되었다. 선별해 글을 올리는 것도 생각보다 머리를 많이 쓰게 했다. 고민을 한 만큼 하나둘 라이킷 알림이 있을 때 묘한 전율이 흘렀다. 그것은 내가 인정받는다는 우쭐함이 아니라 소통한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이었다. 내가 발행하는 글에 신중을 기한 만큼, 다른 작가의 글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찾아 읽은 글의 행간에서 작가의 마음이 미루어 짐작되면서 자연스럽게 라이킷이 눌러졌다. 전혀 다른 관심사와 스타일의 글들이지만, 글을 쓰는 동안 자신에게 충실하고 글에 충실하고 삶에 충실한 마음이 전해졌다. 그 마음들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따뜻해졌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공간, 글에 순수함을 담고 그 순수함으로 세상을 버티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열정의 기운이 느껴지는 공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며 의지하는 공간. 그것이 짧은 시간 동안 느낀 브런치에 대한 소감이다.     


이제 무엇을 쓸까? 내 관심사를 옮기고 넓히는 이 고민이 오늘의 산책을 느릿느릿 그러나 오래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쓸까,라는 고민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가,라는 질문에 대한 오늘의 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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