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성 Nov 15. 2021

시지프스의 무언의 동지들

오늘도 한 계단을 오르며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층으로 데려다주는 편리한 엘리베이터다.


“10대-공부와 대학 입학”

“20대-좋은 직장 골인”

“30대-결혼과 출산”

“40대-승진과 내 집 마련”

“50대-자녀의 대학 입학과 취업”

“60대-퇴임과 자녀 결혼”

“70대-연금과 제2의 인생”

“80대-건강한 전원생활”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는 한 번만 누를 수 있고, 내려가는 기능은 없으니 누를 때 신중해야 한다. ‘70대-연금과 제2의 인생’ 층을 눌렀다가 그 이전의 시간이 엘리베이터의 속도에 못 이겨 기억 속에서 소멸할지 모른다. 어떤 이는 ‘40대-승진과 내 집 마련’을 눌렀다가 승진한 회사에서 명퇴를 당하고, 내 집 판 돈을 치킨집 보증금으로 털어 넣었다. 어떤 이는 ‘30대-결혼과 출산’ 버튼을 세게 눌렀는지 두 번의 결혼을 했다. 어떤 이는 ‘20대-좋은 직장 골인’을 눌렀는데, 그 좋은 직장이 자신을 비정규직으로만 쓰고 있다.


나는, 어떤 층의 버튼을 누를지 결정을 못해서 엘리베이터 탈 때를 놓쳐 버린 나는, 여전히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무릎 굽히고 허리 힘 줘야 하는 계단을 오른다. 위를 올려다보면 까마득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내딛을 걸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딛은 걸음에 대한 후회와 짝을 이뤄 한 칸을 오르는 데 겨우 성공한다. 두려움 후회 두려움 후회 두려움 후회.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영원히 계속될 계단 오르기의 저주다.


그래도 올려다볼 용기도 내려다볼 지혜도 얻었으니 이만큼이나 올라온 보람이 있다. 에어컨 풀가둥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필요 없을 땀을 닦는다. 땀을 닦는 김에 잠시 앉아 쉬어 본다. 오늘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본다. 나만큼이나 끙끙대며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동일한 속도로 묵묵히 오르는 사람도 있고, 해찰이 심해 여기저기 돌아보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사람도 있다. 혼자가 아니라 등에 다른 사람을 업고 올라가는 사람도 보인다. 끌려가는 사람도 있고, 멈추어 옆으로만 가다가 벽에 부딪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오른다. 한 번은 마쳐야 하는 길을 바지런히 오른다. 혼자가 아니라고 살아서 증명하는 이 모든 이들 덕에 나는 다시 일어서서 올라갈 힘을 얻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퍼서 외롭다"라고 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