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핸드폰이 신체의 일부가 된 현대사회...디지털 거리두기 필요
- 핸드폰이 신체의 일부가 된 현대사회...디지털 거리두기 필요
퇴근 후 다소 늦은 저녁 시간, 아이를 데리러 처가댁에 차를 타고 부랴부랴 갔다. 장모님께서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계셨고, 나와 아내는 아이의 옷과 장난감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땀을 많이 흘린 이 장난꾸러기의 온몸을 깨끗이 씻기고 차에 몸을 실었다.
바쁘지만 행복한 순간이다. 오늘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고, 천사 같은 아이는 아빠와 엄마를 보며 애교 섞인 미소를 날린다. 진짜 심장이 아플 정도로 사랑스럽다. 이제 아이를 빨리 재우면, 우리 부부는 넷플릭스를 틀고 맥주 한 캔과 과자를 나눠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것이다. 완벽한 시나리오다.
집에 오고 아이를 재우고, 우리도 한숨 돌리며 거실에 함께 앉았다. 어딘가 손이 허전하다. 핸드폰이 없다. 차에 다시 가봐도 이놈의 행방을 찾을 수 없다. 아내가 장모님께 카톡을 보내 여쭤보니, 식탁 옆에 놔두고 간 것으로 확인됐다. 아니, 핸드폰이 없으면 나를 찾는 수많은 연락을 어쩌지? 그나마 내일이 주말이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본의 아니게 다음 날 오후까지 핸드폰 없는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는 수시로 뉴스를 체크하고, 단톡방에 쉬지 않고 ‘단독’이 달린 자극적인 기사들이 올라오는 것을 지켜본다. 유튜브는 어떠한가. 분명 어떤 목적을 갖고 ‘이 영상만 봐야지’라는 생각에 접속했다가, 기묘한 알고리즘에 매혹되어 손흥민 선수의 골부터 가수 박효신의 라이브, 10년 전 100분 토론, 현대 미술 강의까지 온갖 영상을 ‘섭렵’하게 된다.
링크드인에는 누가 댓글을 달지 않았나, 리멤버에는 지인의 이직이나 진급 소식이 업데이트되지는 않았나, 회사 메일함에는 새로운 내용이 수신되지 않았나. 정말 끝도 없다.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고립, 소외,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고개를 처박고 핸드폰만 연신 바라보는 ‘디지털 좀비’를 만들어냈다.
인간과 핸드폰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개체로 연결된 양 우리는 디지털에 종속되어 삶을 살아간다. ‘접속’이라는 말도 어색하다. 내가 핸드폰이고, 핸드폰이 나다. 핸드폰은 신체의 일부가 됐다. 강박적 과용은 사용자와 상품의 위치를 뒤바꿔놓을 수 있다. 누가 주인인가.
아무쪼록 이 머리 좋은 잘난 놈, 이름부터 스마트한 이 고철을 떨어뜨려 놓고 온 덕분에 나는 기사에서나 접하던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라는 것을 짧게나마 해보게 됐다.
다음날 스마트한 이 녀석과 재회하고 바로 카톡 창을 켜보니, “역시 이놈의 인기란”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듯 수많은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근데 ‘양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질적’으로는 유의미한 메시지가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업무에서 숨 쉴 틈이 생기는 주말인 점도 있겠지만, 딱히 이걸 내가 바로바로 확인할 필요가 있나 싶은 찌꺼기들이 누적되어 있었다. 안 읽어도 그만인 것들.
잠자는 시간 포함해서 약 17시간의 디지털 디톡스. 아내는 핸드폰을 안 보는 내가 좋다고 했다. 자기도 덩달아 폰을 덜 보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연애 때 얘기부터 여행 얘기, 꿈 얘기를 주고받았다. 아내의 예쁜 눈도 평소보다 더 많이 바라봤고, 아내의 목소리에도 더 귀를 기울였다.
좋았다. 근데 동시에 아차 싶었다. 이 핸드폰이라는 놈 때문에 그동안 이런 귀한 시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언제부터인가 ‘연결’은 긍정적인 어감으로만 유통되고 있는 듯하다. 한 번쯤 이 디지털 시대의 여러 얼굴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때로는 연결이 아닌 (디지털과의) 절연도 필요한 법이다. 잠시 끊어보자. 너무 똑똑해서 운치 없는 핸드폰이라는 기계 덩어리와.
sbizconomy@daum.net / 석혜탁 칼럼니스트
최근엔 필명으로 글을 많이 쓰지 않고 있지만, 이따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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