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름보다는 ‘다채로움’에 방점을 찍으며
최근 회사에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들었다. 두 분의 연사가 회사로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었다. 그중 한 분은 청각장애인이었다. 유창하게 강의를 전개하기에 전혀 알지 못했는데, 중간에 퀴즈를 내겠다고 말한 후 음성이 아닌 손짓으로 답변을 달라고 했다. 나는 답을 알 것 같은 문제에 손가락으로 3번을 표시했다. 서로 눈을 마주 보며. 그는 정답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강연을 참 많이도 들었던 것 같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명사를 눈앞에서 보기도 했고, 한때 “저분처럼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졌을 정도의 롤 모델 같은 인물의 강의를 접한 적도 있다. 물론 다 좋았다.
다만 자신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밀도 있는, 그야말로 ‘꽉 찬’ 강의를 펼친 그의 목소리가 유달리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장애는 일부에게만 영원히 속하는 고정된 딱지가 아니다. 누구나 그 자리에 설 수 있다. 단기적 부상과 장기적 질병, 스스로에 대한 인식(그리고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인식)과 이동 능력의 변화, 감정적 구성에 일어나는 만성적 오작동 같은 것들이 당장 내 삶에서는 현실이 아닐지라도, 언젠가 내 몸에서 또는 나와 친밀하게 삶을 공유하는 사람의 몸에서 어떤 형태로든 일어날 수 있다.”
사라 헨드렌(Sara Hendren)은 그의 저서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원제 : What Can a Body Do?: How We Meet the Built World)>에서 위와 같이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후천적 장애의 비율은 약 80%에 달한다. 그의 말마따나 장애는 ‘고정된 딱지’가 아니다. 조사 기관마다, 측정 기준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 비율이 더 높아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누구나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인데, 장애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박약하기 그지없다.
위의 책은 3년 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올해 번역이 됐다. 사라 헨드렌은 일찍이 2016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끼어든 경사로(Slope : Intercept)>를 선보인 디자이너이다. 경사로가 장애 보조 장치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나 스케이트 보더에게는 역동적인 놀이기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경사로가 꼭 시혜적인 장치만은 아니라는 것.
이 경사로에서 세계적인 안무가인 엘리스 셰퍼드(Alice Sheppard)의 공연이 펼쳐졌다. 그는 휠체어를 타면서 경사로를 자유롭게 누빈다. 그는 말한다. “휠체어는 이동 수단도 아니고 저를 보완해 주는 도구나 테크놀로지의 결과물도 아니에요. 그저 제 몸의 한 부분이죠. 그리고 아름답지요.”
배우 박은빈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감명 깊게 본 드라마였기에 기뻤다. 드라마에서 그의 연기는 정말 손색이 없었다. 우영우 그 자체였다. 역할 소화에 대한 부담이 컸을 텐데,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라는 우영우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진실하게 그러면서도 묵직하게 전달했다.
이 배우는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속이 정말 단단한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달라지는 데 한몫을 하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작품을 하면서 적어도 이전보다 친절한 마음을 품게 할 수 있기를, 또 전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다름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인식하길 바라면서 연기했다”는 그의 수상 소감.
박은빈은 핵심을 찔렀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이전보다 친절한 마음을 갖고, 다름을 다채로움으로 인식하는 것. 한 10여 년 전에 많이들 했던 말이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였다. 박은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다름보다는 ‘다채로움’에 방점을 찍으며. 우리도 여기서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다채로움에 공감하는, 좀 더 친절한 사회. 우영우의 발걸음도 그쪽으로 향할 터이다.
sbizconomy@daum.net (#석혜탁 / <논객닷컴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