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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May 28. 2023

장애를 대하는 네 가지 장면, 친절함과 다채로움에 대해

- 다름보다는 ‘다채로움’에 방점을 찍으며

[석혜탁 칼럼] 장애를 대하는 네 가지 장면, 친절함과 다채로움에 대하여

- 다름보다는 ‘다채로움’에 방점을 찍으며


장면1.


최근 회사에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들었다. 두 분의 연사가 회사로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었다. 그중 한 분은 청각장애인이었다. 유창하게 강의를 전개하기에 전혀 알지 못했는데, 중간에 퀴즈를 내겠다고 말한 후 음성이 아닌 손짓으로 답변을 달라고 했다. 나는 답을 알 것 같은 문제에 손가락으로 3번을 표시했다. 서로 눈을 마주 보며. 그는 정답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강연을 참 많이도 들었던 것 같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명사를 눈앞에서 보기도 했고, 한때 “저분처럼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졌을 정도의 롤 모델 같은 인물의 강의를 접한 적도 있다. 물론 다 좋았다. 


다만 자신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밀도 있는, 그야말로 ‘꽉 찬’ 강의를 펼친 그의 목소리가 유달리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장면2.


“장애는 일부에게만 영원히 속하는 고정된 딱지가 아니다. 누구나 그 자리에 설 수 있다. 단기적 부상과 장기적 질병, 스스로에 대한 인식(그리고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인식)과 이동 능력의 변화, 감정적 구성에 일어나는 만성적 오작동 같은 것들이 당장 내 삶에서는 현실이 아닐지라도, 언젠가 내 몸에서 또는 나와 친밀하게 삶을 공유하는 사람의 몸에서 어떤 형태로든 일어날 수 있다.”
사라 헨드렌 교수의 저서.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사라 헨드렌(Sara Hendren)은 그의 저서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원제 : What Can a Body Do?: How We Meet the Built World)>에서 위와 같이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후천적 장애의 비율은 약 80%에 달한다. 그의 말마따나 장애는 ‘고정된 딱지’가 아니다. 조사 기관마다, 측정 기준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 비율이 더 높아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누구나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인데, 장애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박약하기 그지없다.  



장면3.


위의 책은 3년 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올해 번역이 됐다. 사라 헨드렌은 일찍이 2016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끼어든 경사로(Slope : Intercept)>를 선보인 디자이너이다. 경사로가 장애 보조 장치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나 스케이트 보더에게는 역동적인 놀이기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경사로가 꼭 시혜적인 장치만은 아니라는 것.

끼어든 경사로(Slope : Intercept). 사라 헨드렌은 경사로가 꼭 시혜적인 장치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줫다.

이 경사로에서 세계적인 안무가인 엘리스 셰퍼드(Alice Sheppard)의 공연이 펼쳐졌다. 그는 휠체어를 타면서 경사로를 자유롭게 누빈다. 그는 말한다. “휠체어는 이동 수단도 아니고 저를 보완해 주는 도구나 테크놀로지의 결과물도 아니에요. 그저 제 몸의 한 부분이죠. 그리고 아름답지요.”



장면4.


배우 박은빈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감명 깊게 본 드라마였기에 기뻤다. 드라마에서 그의 연기는 정말 손색이 없었다. 우영우 그 자체였다. 역할 소화에 대한 부담이 컸을 텐데,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라는 우영우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진실하게 그러면서도 묵직하게 전달했다.  


이 배우는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속이 정말 단단한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달라지는 데 한몫을 하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작품을 하면서 적어도 이전보다 친절한 마음을 품게 할 수 있기를, 또 전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다름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인식하길 바라면서 연기했다”는 그의 수상 소감.
박은빈은 핵심을 찔렀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이전보다 친절한 마음을 갖고, 다름을 다채로움으로 인식하는 것이 긴요하다.

박은빈은 핵심을 찔렀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이전보다 친절한 마음을 갖고, 다름을 다채로움으로 인식하는 것. 한 10여 년 전에 많이들 했던 말이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였다. 박은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다름보다는 ‘다채로움’에 방점을 찍으며. 우리도 여기서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다채로움에 공감하는, 좀 더 친절한 사회. 우영우의 발걸음도 그쪽으로 향할 터이다.


sbizconomy@daum.net (#석혜탁 / <논객닷컴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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