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첫 책을 냈다. 지금보다 나이도 어렸고, 경력도 일천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투고’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출판사의 생리는 어떤지, 편집자의 고민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흥미롭게 읽었던 어떤 책의 뒷장에 적힌 메일 주소로 이런 책을 내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다. 일단 두 개 출판사에 연락을 해본 후 반응을 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메일을 보내고 주말이 지나 전화를 받았다. 한번 보자는 것.
그렇게 영향력이 큰 출판사에서 첫 책을 낼 수 있었다. 지금보다 체력도, 열정도 남달랐던 그때 필자도 꽤 열심히 썼다. 휴가를 내고 외대 도서관에서 참고할 책을 찾아보며 집필에 몰두했다.
출간 후 마케팅 역량이 뛰어났던 출판사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다만 당시 나의 스탠스는 ‘홍보’에 대해 지극히 양가적이었다. 책을 알리고 싶긴 했지만, 저자가 드러나서는 안 됐다. 여러 이유로 필명으로 낸 책이었다. 저자 인터뷰 기사나 얼굴이 나오는 ‘보이는 라디오’ 같은 영상 출연을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귀한 기회였는데, 그때는 그렇게 그렇게 판단했다. 작가가 아닌 회사원으로서 내린 결정이었다.
첫 책은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판매 실적도 예상 이상이었다. 대기업 인재개발원의 추천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고, 강연이나 기고 제안도 활발히 들어왔다. 그땐 그게 ‘운발’인 줄 잘 몰랐다.
6년이 지났다. 첫 책 출간 후 유부남이 됐고, 아빠가 됐다. 회사도 한번 옮겼다. 팀원에서 팀장이 됐다. 박사과정 코스웍을 마쳤다. 경험과 인식의 폭도 확장됐다. 필명뿐 아니라 본명으로 기고도 많이 하게 됐다. 하지만 껍데기보다 중요한 것은 부지런한 글쓰기다.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겨야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경영 분야 책을 한 권 다시 내고 싶은데, 6년 전처럼 쉽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단순, 무식, 용감한 태도가 필요한데, 무턱대고 투고 메일을 보냈던 ‘치기’가 실종됐다. 생각만 많아졌다. 이번엔 필명이 아닌 본명으로 내게 될 터라, 본격적으로 쓰기도 전부터 고려할 것투성이다.
핑계 혹은 (합리적으로 인식되는) 사정도 많아졌다. “애기랑 놀러 가야 하는데”가 대표적. 사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육아다. 아, 그러면 육아 관련 책을 써볼까, 라는 실없는 소리를 되뇐다.
최근 2년 정도 매체 두 곳에 본명으로 정기 기고를 했다. 주제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원고의 부피가 꽤 된다. 물론 경영 트렌드의 변화라는 것이 워낙 빨라서, 지금 시점에서는 생명력이 상실된 텍스트도 더러 보인다.
다시 본질로 돌아간다. 글쓰기도 습관이다. 한때 매월 두 편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도 분명 바빴을 터인데, 늘 글감을 찾느라 눈과 귀와 손이 바빴다. 그 예민한 촉수가 그립다.
위에서 지난 출간 과정을 복기해 보고 최근의 게으름을 고백한 것은, 앞으로는 다시 성실하게 써보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서다. 누가 열심히 써야 한다고 시키는 것도 아니지만. 6년 전에도 내가 좋아서 쓴 것이니.
그러다 보면, 다시 또 출간 작가로 돌아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라는 희미한 기대를 안고. 물론 회사 일과 육아 등으로 하루하루 정신이 없다. 그래도 내가 참 좋아했던 글쓰기에 에너지를 다시 좀 더 투여해 보려 한다.
아이에게 아빠의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책 쓰기, 몇 년 만에 다시 문득 든 생각이다. 그 출발은 다시 글쓰기다. 회사에서도 가끔씩 부러 ‘혼밥’을 해야겠다. 예전처럼 시간을 쪼개 짧은 글이라도 써야겠다. 스스로에게 ‘건필’을 당부해 본다. 날이 따사롭다. 쓰고 생각하기 좋은 계절이다.
sbizconomy@daum.net / 석혜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