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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Jul 06. 2024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소변이지, 눈물이 아니다_석혜탁

[석혜탁 에세이]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소변이지, 눈물이 아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이 눈물만이 아니죠~!”


공중화장실에서 본 문구 © 석혜탁 촬영


살면서 아마 수백 번은 봤을 문구다. 늘 별생각 없이 지나쳤다. 하긴 화장실에서 뭐 대단한 생각씩이나 할 필요가 있겠는가. 거울 한 번 보고, 손 깨끗이 씻고 나가면 될 일이다.


근데 어느 주말, 화장실에서 ‘눈물’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소변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고로 ‘한걸음 가까이’ 가야 하는 것도 옳다. 한데 남자는 진짜 눈물을 흘리면 안 되나?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본 질문. 이 생경한 자문에 말문이 막혔다.


슬플 때, 감동을 받았을 때, 아플 때 가끔 자기도 모르게 절로 나오는 눈물이 창피한 것인가. 남자는 흘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니, 눈물을 틀어막는 게 능사일까.


되레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 

눈물을 억지로 참고 다른 방식으로, 즉 눈물을 대체할 다른 자극으로 풀어버렸던 것을 아닐까? 물건을 집어던진 것도 아니고, 화를 내고 욕을 한 것도 아닌데, 눈물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남자에게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이 되었을까. 


애기 때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많이들 운다. 아이 아빠인 필자는 아이의 우는 모습도 그저 사랑스럽다. 아들이나 딸이나 많이 울면서 자라는 것인데, 나이 좀 먹기 시작하면서 ‘남자는’으로 시작하는 기괴한 문장으로 사람을 목석으로 만들어버린다. 


‘흘리지 말아야 한다’는 표현은 눈물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만약 눈물이 나쁜 것이라면, 애나 어른이나 여성이나 남성이나 공히 흘리지 말아야 할 터이다. 


‘울음을 참는 것’과 ‘강인함’이 등치되는 희한한 세상.


필자도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가끔은 영화에서 슬픈 장면이 나올 때 눈물이 난다. 특히 부모가 된 이후로는 아이와 관련된 주제에서 쉽게 무너진다. 물론 전혀 부끄럽지 않다. 재미있는 것을 봤을 때 박장대소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웃길 때 억지로 웃음을 참는다고 생각해 보면, 좀 엽기적이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은 눈물을 작위적으로 참는 기계 덩어리의 멘탈리티가 아니다. 공적인 분노로 울 줄 아는 사람,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기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부족하다. 


안구 건조증만큼이나 우려되는 것이 감정의 건조함이다. 메마른 오징어처럼 바싹 마른 건어물 같이 되지 말자. 우린 사람이다. 울 것 같을 땐 울자. 감정도 정화될 것이고, 눈가도 마음도 촉촉해질 것이다.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소변이지, 눈물이 아니다. 화장실에서는 소변기 앞으로 한걸음 가까이 가야 마땅하고, 여러 복잡한 감정에 휩싸일 땐 마음 속으로 한걸음 가까이 들어가보자. 눈물 좀 흘려도 괜찮다. 


가끔은 울보가 되는 형, 동생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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