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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Jan 23. 2024

우리 팀 막내이자 '동료'였던 그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그가 오버스펙이라는 나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부족한 건 그가 아니다.

우리 팀 막내이자 '동료'였던 그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 그가 오버스펙이라는 나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부족한 건 그가 아니다.


대개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마지막 주에는 사내에 휴가자가 많다. 그간 사용하지 못한 휴가를 몰아 쓰는 것이다. 휴가를 올린 직원들은 오늘이 올해 마지막 출근이라며 새해 덕담을 건넨다. 휴가를 소진해 자리에 남아 있는 직원들도 유쾌하게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다. 


부산했던 사무실이 조용해진다. 평소보다 오는 전화도 거는 전화도 줄어든다. 우리회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도 휴가자가 많기 때문일 테다. 이게 상례인데, 이번 연말 연초엔 유독 바빴다. 보고할 일도, 결재받을 사안도 많았다. 직장인으로서의 나이테가 쌓이다 보니, 보고받을 일도, 결재할 사안도 많아졌다. 모두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다.


연초까지 몰아친 업무를 어느 정도 마무리해 놓고 주말을 맞이했다. 남들은 12월에 링크드인 같은 채널에 ‘2023년 회고’ 같은 류의 글을 올리던데, 지금 그런 거창한 정리 작업을 하는 것은 타이밍상 늦은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회고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작년에 ‘동료’로서 기억나는 친구가 있어 그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연차에 비해 또래보다 조금 일찍 팀장 직책을 맡게 된 필자는 아직도 부족한 게 많고, ‘관리자’라든가 ‘리더십’이라는 말이 입에 쉬이 붙지 않는, 그리고 사실 ‘내 일’ 처리하기도 정신없는 이 시대의 많고 많은 그런 평범한 직장인의 전형이다. ‘팀장님’ 소리를 듣고 있지만, 가끔은 “내 팀장님은 어딨나”라는 싱거운 혼잣말을 되뇌곤 한다.


작년 우리 팀에 불가피한 상황이 생겨 몇 개월 한정된 시간 동안 함께 근무할 직원이 필요했다. 서류전형, 면접전형을 거쳐 그는 출근을 했고, 이내 특유의 친화력과 유연한 업무감각으로 우리 층의 ‘인싸’가 됐다. 업무에 대한 흡수력이 남달랐고, 업무 범위에 대한 욕심도 컸다. 경력상으로는 훨씬 선배인 필자와 다른 팀원들이 되레 배울 점이 많았다고 느꼈다. 

그의 에너지와 역량을 온전히 흡수해 갈 회사가 어디일지 모르지만 참 부럽다. 나름 필자도 이제 실무에서 오래 굴렀던 사람인데, 이렇게 평가하는 친구가 많지는 않다.

사원으로서 다른 팀 대리들과 유달리 살갑게 잘 지내던 그의 사교성은 부서 간 업무 협업 과정에서 특히 빛이 났다.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훨씬 부드러워진 것이다. 업무 기간 조금이라도 그의 경력 기술서가 풍성해지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의 손이 조금이라도 닿은 것에, 그의 이름과 흔적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는 ‘막내’라기보다는 정말 ‘동료’였다. 


그만의 보폭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를 바란다. © 석혜탁 촬영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약속된 계약기간은 만료됐다. 필자는 팀장으로서 처음에 계약한 내용과 상관없이 뛰어난 직원임을 근거로 그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했다. 


하지만 그 친구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회사에는 ‘규정’이라는 것이 엄존했고, 원칙의 ‘반례’를 만들기에는 당시 업계 전반에 불어 닥친 불경기와 불확실성의 여파가 컸다. ‘나이도 어린 팀장 나부랭이’ 소리 딱 듣기 좋은 행동이었다. 심지어 조직의 크기를 키우려는 정치적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전해 들었다. 그것도 나를 아끼는 선배로부터.


아무쪼록 이별의 시간이 왔다. 그의 역량을 지켜본 나와 동료들은 그의 앞길에 진심을 담아 축복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또한 정중하게 그러면서도 특유의 귀여움을 곁들여 감사 인사를 보내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인사했다. 아끼는 동료와 헤어지는 데 드는 시간은 정말 잠깐이었다. 이후 필자는 그에게 근황을 묻는 등의 성가신 연락은 자제해왔다. 나이 차이가 꽤 나기에 부담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오버 스펙’이라는 말을 종종 썼다. 그가 오버 스펙이라는 나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부족한 건 그가 아니다.

필자는 그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오버 스펙’이라는 말을 종종 썼다. 필자가 대학 졸업반일 때도 취업이 어렵다, 어렵다 했는데, 최근에는 특히 인문계 졸업생에게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고 한다. 사회에서 숱하게 많은 실무 전문가를 만났고, 지금도 여러 맥락으로 대학생들 및 취업준비생들과 소통할 일이 많은데, 그 친구 정도 되는 인재를 찾기 쉽지 않다. 그가 오버 스펙이라는 나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부족한 건 그가 아니다.


최근 그와 친했던 대리(그는 이들을 ‘언니’라 부를 정도로 회사 밖에서도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들에게 그가 열심히 취업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의 에너지와 역량을 온전히 흡수해 갈 회사가 어디일지 모르지만 참 부럽다. 나름 필자도 이제 실무에서 오래 굴렀던 사람인데, 이렇게 평가하는 친구가 많지는 않다. 


그러니 그 행운을 가져가는 회사가 여럿 나왔으면 좋겠다. 한때 잠시나마 그의 팀장이었던 필자가 배 아플 정도로 부럽게 ‘좋은 회사’로, 그의 잠재력을 꿰뚫어보는 ‘좋은 부서’에서 그가 멋지게 커리어를 새롭게 시작하는 갑자년이 되길 바란다. 나의 동료였던 그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굳럭!
‘팀장님’ 소리를 듣고 있지만, 가끔은 “내 팀장님은 어딨나”라는 싱거운 혼잣말을 되뇌곤 한다.
한때 잠시나마 그의 팀장이었던 필자가 배 아플 정도로 부럽게 ‘좋은 회사’로, 그의 잠재력을 꿰뚫어보는 ‘좋은 부서’에서 그가 멋지게 커리어를 시작하는 갑자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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