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ESG 오디세이] 기후위기가 바꾸는 주거 불평등의 지도
김민석 <일하는 사람을 위한 ESG적 생각> 저자
한 마을이 토사에 덮였다.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기후재해로 인한 비자발적 이주는 더 이상 외신 속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구도심에 자본이 유입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지칭한다. 그런데 이제 그 원인에 '기후'가 추가되었다. 기후 젠트리피케이션(Climate Gentrification)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해 위험이 부동산 시장을 재편하면서 취약계층을 주거지에서 내모는 현상이다.
마이애미가 대표적이다. 한때 부유층의 상징이었던 해안가 고급 주택가는 이제 위험지대가 되었다. 해수면 상승과 강력해진 허리케인이 일상을 위협하자 부유층은 안전한 고지대로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고지대에 거주하던 저소득층은 오히려 위험한 저지대로 밀려났다. 경치 좋은 오션뷰는 이제 침수 위험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은 세 가지 경로로 설명된다. 첫째, 우위지역 투자 경로(Superior Investment Pathway)다. 기후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투자가 집중되면서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상승한다.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의 리틀하이티 지역은 지대가 높아 침수 위험이 낮다는 평가를 받으며 투자가 몰렸고, 이로 인한 임대료 급등으로 저소득 이민자들이 경제적 압박에 내몰리고 있다. 미래의 기후 불안이 현재의 부동산 가치를 재편하는 것이다.
둘째, 비용부담 경로(Cost-Burden Pathway)다. 기후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보험료, 방재시설 설치 및 유지비용이 누적되면서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주민들이 거주지를 떠나게 된다. 베네치아는 잦은 침수로 인해 가정과 상점이 집수펌프, 방수문, 가구 교체 등 반복적인 방재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관광 수요로 인한 임대료 상승까지 겹치면서 중저소득층이 생활비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셋째, 방재투자 경로(Resilience Investment Pathway)다. 재해 대응을 위한 공공투자가 역설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촉발한다. 코펜하겐은 2011년 집중호우 피해 이후 엥하베파르켄 공원을 침수 방지 기능을 갖춘 친환경 공원으로 재설계했다. 이는 지역의 안전성뿐 아니라 경관과 생활 편의성을 높여 부동산 가치를 상승시켰다. 하지만 그 결과 저소득층은 높아진 임대료와 세금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안전을 위한 투자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학문적 논의를 넘어 정책 현장의 긴급한 과제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결코 가치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욕망과 갈등, 불평등이 집약된 이 단어에 이제 '기후'라는 새로운 변수가 추가되었다. 그 영향력은 점점 커질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정책이 여전히 재해 대응, 주거 안정, 사회 안전망을 분절된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정책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는 것을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하지만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은 그 차원을 넘어선다. 경제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환경, 사회, 공간, 제도를 아우르는 학제 간 접근이 필요한 복합적 문제다.
도시 규제 역시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재해 저감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변화, 특히 취약계층의 주거 불안정성을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방재투자가 오히려 원주민을 내모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기후위기의 영향도 단순하지 않다. 해수면 상승만이 문제가 아니다. 집중호우, 홍수, 산불, 극한 더위와 추위까지 다양한 양태로 우리 삶을 위협한다. 이에 대한 종합적 고려 없이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
토지이용과 도시계획 전반에 기후 변수를 통합해야 한다. 공공주택 공급 정책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재해위험지역에서 이주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을 어디에 공급할 것인가? 기후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급은 또 다른 이주를 예고할 뿐이다.
물론 지가는 기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입지, 교통, 학군, 개발 계획 등 전통적 변수들이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해안가 부동산 시장에서 기후위험이 이 모든 요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파악하려면 치밀하고 정교한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 특히 한때 프리미엄이었던 입지 요소가 이제는 위험 요소로 전환되는 복잡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해외 사례를 그대로 이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아파트 중심의 우리 주거 구조는 단독주택 위주의 해외와 다르다. 그럼에도 마이애미, 베네치아, 코펜하겐의 경험에서 도출할 수 있는 정책적 시사점은 분명하다. 기후 재해와 그에 따른 시장 반응이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해외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지만, 기후재해로 인한 주거 이동과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이제 주기적으로 마주해야 할 현실이 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 이슈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누가 어디에서 살 수 있는가, 누가 안전을 누릴 수 있는가의 문제다.
행정학과 정책학의 관점에서 볼 때,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형평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다음 재해가 또 다른 이주를 만들기 전에, 정책은 달라져야 한다. 기후변화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 피해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 그것이 지금 우리 정책이 마주한 진짜 과제다.
김민석 listen-liste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