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마광수를 접했다
- 개인주의 그리고 자유
나는 군대에서 마광수를 처음 접했다.
그가 쓴 에세이를 몇 권 보게 되었다.
그의 소설을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시간이 더 지나서였다.
그가 세상에 쏟아낸 문장. 정말 왕성한 생산력이었다.
개인주의, 자유에 대한 그의 언설은 개인주의, 자유와 가장 거리가 먼 환경에 처해있던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오늘 우연히 예전 '싸이월드'라는 공간에 접속하게 되었다.
비공개 상태로 둔 지 상당히 오래됐던 곳이라 기억에서 사라졌었는데, 그곳의 다이어리와 게시판 등에 주절주절 늘어놓은 글들이 많았다. 어떤 건 민망해서 차마 다 읽을 수 없었고, 어떤 내용은 나이 먹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군대에는 '사지방'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이버지식정보방의 준말이던가.
아무튼 부대 내 pc방으로 생각하면 된다. 돈도 내야 한다.
군대에서 한참 답답함을 느꼈던 그때, 마광수의 문장을 노트에 끄적였고, 그것을 내 싸이월드 게시판에 적어두었던 것을 몇 년만에 발견했다.
군대에서 읽은 여러 책들 중 그 어떤 달달한 말보다 나는 마광수의 문장을 통해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재미있었다. 또 날카로웠다.
그 중 몇 구절을 브런치에 옮긴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하면서 진리를 자유보다 우위에 두는 실수를 범했다. 그러나 나는 예수의 말이 ‘자유가 우리를 진리케 하리라’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항상 독재 이데올로기적 도그마의 형태를 띠기 쉽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마광수,『운명』,250쪽)
“한국의 여러 진보주의자들은 진보적인 차원에서,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적인 취지에서, 개인주의를 공격했다. 이때 개인주의는 자주 이기주의와 혼동되었다. 이 무의식적인 또는 악의적인 공세에 가담한 것은 자유주의를 빙자한 자본지상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온전한 근대화의 전제 조건이자 근대 너머로 가는 원동력이 되는 개인주의는 한국사회에서 압살되어 왔다. 개인의 자유가 부족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이 얼마나 황당하고 모순된 일인가.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개인주의의 중요성을 깨달아 나가야 한다.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마광수,「야하디 야하라」,『인물과 사상』,2006년 4월,141쪽)
“호전적인 국수주의나 민족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종에서 비롯되는 ‘전쟁’으로 지구촌을 전멸시킬 수 있으므로, 낭만주의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마광수,「야하디 야하라」,『인물과 사상』,2006년 4월,155쪽)
“나는 소설의 목적이 ‘계몽주의적 설교’에 있다고는 보지 않기 때문에 일체의 도덕적 코멘트나 이른바 ‘전망의 제시’ 같은 것을 무시하면서.......”(마광수,『즐거운 사라』,‘작가의 말’ 중에서)
늦었지만 3달 전 유명을 달리한 마광수 선생의 명복을 빈다.
당신은 그야말로 '천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