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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Apr 05. 2018

유통 상식사전 #22. 왝더독(Wag the dog)

- ‘게이미피케이션’과 ‘하비테인먼트’로 읽는 왝더독 소비심리

유통 상식사전 #22. 왝더독(Wag the dog) 현상

- ‘게이미피케이션’과 ‘하비테인먼트’로 읽는 왝더독 소비심리 

(한국교직원공제회 사보 기고)


<연례행사가 된 17개의 스타벅스 스티커 모으기>

다이어리를 갖기 위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행렬. 스타벅스의 다이어리를 받고자 평소보다 더 빈번하게 스타벅스를 찾아 커피와 음료를 마셔대고, 그 다이어리가 등장한 것을 보고 비로소 연말이 됐음을 감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등장한 것을 보고 연말이 됐음을 감지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17개의 스티커를 모으기까지 몇 개가 남았는지를 서로 묻고 답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연례행사가 됐다. 특히 ‘카페인족’들에게! 스타벅스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카페인족 이야기를 꺼내니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을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서 말하는 ‘카페인’의 의미와 맥락은 커피와 딱히 상관이 없다. 주요 SNS 채널인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 글자를 딴 조어인 것. ‘카페인’에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손에 쥔 사람들의 인증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는 새해를 맞이한다. 일개 다이어리가 우리의 연말 풍경을 좌지우지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일개 다이어리가 우리의 연말 풍경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사실 스타벅스 다이어리와 품질, 디자인 등이 엇비슷한 제품은 일반 문구점에서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잔도 아니고 무려 17잔이나 마신 것을 어플로 ‘증명’까지 해야 받을 수 있는 이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금이나 은으로라도 만든 것일까? 


본제품인 커피보다 한낱 사은품에 불과한 다이어리를 더욱 갈구하는 이 불가해한 장면, 이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소비사회의 웩더독(Wag the dog) 현상이다. 사은품은 사실 ‘덤’으로 주는 것인데, 이 ‘덤’에 더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 알쏭달쏭한 심리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게이미피케이션, 소비심리와 게임구조의 결합>

17개의 스타벅스 e-스티커를 모으는 과정은 롤플레잉 게임의 서사와 닮아 있다. 중요 아이템을 하나하나 모아서 미션을 통과하는 게임의 구조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스티커를 차곡차곡 적립해 다이어리를 받아내는 과정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하나는 가상공간에서 전개되는 오락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에서 이뤄지는 소비활동이라는 것뿐. 
온라인 게임의 핵심 아이템을 이용자들끼리 매매하는 것처럼 스타벅스의 스티커도 중고 사이트 카페에서 다양한 가격으로 거래된다.


다이어리 획득은 게임으로 치면 하나의 미션이다.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한 기간은 무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2달이 조금 넘는 기간 내에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온라인 게임의 핵심 아이템을 이용자들끼리 매매하는 것처럼 스타벅스의 스티커도 중고 사이트 카페에서 다양한 가격으로 거래된다. 게임 속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종의 ‘사냥’을 진행하는 게이머처럼 스티커를 다 모은 ‘스벅 덕후’들은 스타벅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점포별 재고 수량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원하는 색상의 다이어리를 찾아 나선다. 


이 기가 막힌 스토리텔링의 구조적 상사성(相似性)! 스타벅스 다이어리의 인기는 게임의 작동 메커니즘을 소비심리와 절묘하게 연결한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요소들이 조화롭게 잘 맞물린 결과로 해석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답은 점차 명징해진다. 게임을 왜 하는가? 전혀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단순하다. 재미있으니까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럼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왜 그토록 갖고 싶어 할까?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그 과정이 게임처럼 흥미롭고 즐겁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스티커를 모으는 번거로운 과정 없이 일정 금액을 주고 바로 구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재미가 없기 때문. 스타벅스의 ‘호갱’을 자처하며, 다국적기업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이 호모 루덴스(Homo Ludens)들의 눈에 그러한 손쉬운 다이어리 구매는 게임의 흥을 깨는 변칙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이들의 게임을 방해한다는 말인가!


<하비테인먼트 트렌드 속 ‘어른이’들의 쑥스럽지 않은 득템!>

취미생활과 쇼핑, 레저의 결합을 일컫는 하비테인먼트(Hobby+Entertainment). 어린이의 감수성을 잃지 않은 ‘어른이(어른+어린이)’들이 최근 하비테인먼트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탄탄한 소비력을 갖추고 있고,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각종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러다 보니 어른이 고객은 시장에서 ‘큰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어른이(어른+어린이)’들이 주도하고 있는 하비테인먼트 트렌드. 

다만 아직까지도 어른들의 장난감 소비를 철없는 행태로 바라보는 시선이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필자는 물론 이 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나, 어쨌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기에 어른이들은 장난감이나 피규어를 살 때 약간의 불편함을 호소하곤 한다. 좀 쑥스럽기도 하고.


장난감 사은품 프로모션은 이런 어른이들의 불편함과 쑥스러움을 대거 해소해준다. 

본제품으로 장난감을 샀다고 하면 주변의 일부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곤 한다. 몇몇 사람들의 이런 생각에 공감을 하고 안 하고와 상관없이, 우리사회에는 자식의 장난감을 사는 경우가 아니면 양복을 입은 40대 남성이 장난감을 집어 드는 모습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가 잔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비취향에 당당한 어른이들도 있다. 문제될 게 없다는 것. 하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이들도 있을 터. 이때 “아, 이거 A 물건을 사더니 공짜로 주더라고” 혹은 “B 상품을 사면 엄청 할인해줘서 재미 삼아 하나 가져왔어”라고 말하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진다. 쑥스럽지 않게 ‘득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롯데리아에 가는 목적이 누군가에겐 햄버거가 아닐 수 있다. 태권V 액션 피규어를 손에 넣는 것이 더 중요한 키덜트 마니아들도 분명 있을 터.

슈퍼마리오 피규어를 갖기 위해 맥도널드에 갔던 직장인 김 대리, 로보트 태권V 피규어를 손에 넣고자 롯데리아에서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던 이 과장. 이들의 심리 기저에는 겸연쩍지 않고 자연스러운 득템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겸연쩍지 않고 자연스러운 득템을 가능케 해주는 햄버거 브랜드의 사은품 프로모션.

필자는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장난감, 만화책, 게임, 프라모델, 인형, 피규어 등을 좋아하는 개개인의 취향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고 무조건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자신의 소비 취향을 밝혀야 할 이유는 없다. 은밀하게 취미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도 많고, 은은한 ‘커밍 아웃’을 즐기는 부류도 있다. 사은품 소비를 통해 본인의 소비활동에 재미요소가 자연스레 더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유의미한 득템이다. 


<공익사업과 연계한 ‘덤 마케팅’의 출현을 고대하며>

사은품을 활용한 프로모션 기법인 ‘덤 마케팅’은 고객들에게 이색적인 재미와 하나를 더 가져간다는 만족감을 선사해준다. 기업에게도, 고객에게도 선호도가 높은 마케팅이다. 그런데 이런 덤 마케팅도 이제 한 단계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눈에 보이는 상품을 하나 더 주거나 싸게 판매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떤 물건을 할인해주며 덤으로 자선단체의 후원 프로그램과 연결해준다든지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선물해주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나 대기업들의 활발한 참여로 보다 활성화됐으면 한다. 


그럴 때 덤 마케팅은 재미, 만족감 외에도 ‘사회적 책임’이라는 키워드를 추가로 얻게 될 것이다. 공익이라는 이름의 꼬리라면, 몸통 좀 흔들어도 괜찮지 않은가? 감동을 ‘덤’으로 받는 다채로운 마케팅이 많아지길 기대해보자.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경영경제 연구공간 ‘비즈코노미’ 대표. <매일경제> 지식우버링 필진, <데일리그리드> 경제전문 필진, <아시아엔> 트렌드 전문기자 등으로 활동 중. 학보, 사보 등에도 기고하고 있음. 유통산업의 변화상을 주제로 한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있다.

기고 및 강연 문의 sbizconomy@gmail.com(hyetak@nate.com)


* 위 글은 한국교직원공제회 사보 <The-K 매거진>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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