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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Dec 27. 2018

‘빵점짜리 엄마’는 없다

- 자책에 방점이 찍힌 이 못된 표현의 부당함을 자각해야 

‘빵점짜리 엄마’는 없다.

- 자책에 방점이 찍힌 이 못된 표현의 부당함을 자각해야


전년도 동기간과 비교한 매출 실적이 가득한 파워포인트, 복잡한 수식으로 구성된 엑셀 파일, 본 자료보다 수 배나 더 많은 양의 첨부자료가 그녀의 손에서 나왔다.


마술사에 가까운 능력이다.

워킹맘은 마술사가 아닌데, 현실에서는 마법을 부려야 살아남는다. ⓒ pixabay


팀 내에서 누구보다 발표력과 기획력이 뛰어난 B.

대학에서 두 개의 전공을 만점에 가깝게 이수하고, 회사에 들어와 앞만 보며 달리며 눈부신 능력을 보여준 그녀.


한데 그녀가 지금 업무에 온전히 집중을 못하고 있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B의 트렌치코트 옷자락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네 살배기 딸아이의 손.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드는 그 특유의 그렁그렁한 눈망울.

이런 아이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엄마의 안타까운 심정은 오죽하랴. ⓒ SBS


기계가 아닌 이상 이 상황에서 집중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똑똑한 B는 이럴 때 마음을 다잡는다며 스스로 독해지고자 몸부림친다.

우리 사회는 이런 기형적인 장면을 치열하다고 상찬하곤 한다. 


근데,

그만 독해져도 된다.


일을 태만히 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아이 때문에 걱정이 되어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복잡한 자신을 정도 이상으로 탓하고 구석으로 몰아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다 잘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다 잘할 수도 없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워킹맘을 로봇으로 만드려고 하는 것 같다.

집단적인 광기다.


로봇이 되기 위해 그만 좀 노력하고, 또 로봇이 되라고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강요하지도 말자.


무엇보다 ‘빵점짜리 엄마’라는 말은 정말 부당하고 못된 표현이다.


보통 어떤 영역에서 성공한 여성이 인터뷰 도중 이런 말을 적잖이 하곤 한다.


“일에서는 완벽했지만, 엄마로서는 빵점....” 따위의 클리셰.


여자, 엄마는 이항대립의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장면을 우리는 자주 목도하곤 한다.  ⓒ SBS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빵점’과 ‘엄마’는 형용모순이다. 문법적으로 틀리다는 거다. 엄마가 어떻게 빵점이 되나.


자신에게 물어봐라.

울 엄마가 빵점인가?”

고개 끄덕이는 인간을 하나도 못 봤다.


빵점짜리 엄마란 없다.

 

물론 겸양의 표현인 것을, 엄마로서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그 마음을 못 헤아리는 게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상한 어법이 언제부터인가 평범한 워킹망들 입에서 너무도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책을 하며.


세상의 모든 엄마는 100점짜리 엄마다.


직장에서도 고군분투하는 B,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100점, 200점이 아깝지 않은 훌륭한 엄마다.


당신의 옷에 매달렸던 그 딸아이도 이를 곧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고, 더 나아가서 또 당신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빵점짜리 엄마는 없다.


겸양의 어법으로라도 ‘빵점짜리 엄마’와 같은 표현은 더이상 운위되지 않길.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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