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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TTA Jul 07. 2016

내가 외국에 나가서까지, 한국인과 놀고 싶진 않았다고

London, United Kingdom, page 3

아마 처음 제목을 본 분들은 '뭐야, 이 건방진 마음가짐은?' 이러실 수 있겠다. 사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에는 제목과 같은 마음이었다. 처음으로 길게 외국으로 가는 여행, 한국에서도 많이많이 매니매니 만날 수 있는 한국인인데, 굳이 외국에서까지 한국인들하고 만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어리고도 건방진 생각이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외국으로 여행 가서는!!! 여러 나라에서 온 다인종 친구들과 international 하게 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여행 3일 만에 와장창 박살 내주었던 좋은 인연들이 다행히 첫 여행지에서부터 등장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런던에 처음 도착해 하나카드가 정지되었을 때 멘붕을 극복하게 도와주신 분들도 한국에서 여행 오셨던 아주머니네) 실제로 외국에서 만나는 한국인 분들은 정말 (소문대로) 좋은 분들이 너무너무 많고, 서로 배려하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정보 알려주려고 하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된다.


- YHA에서의 인연: 은준, 수경, 정민 씨, 수현언니

런던에서의 첫 이틀을 앨리스 런던에서 보내고, YHA 호스텔로 숙소를 옮겼다.

숙소 사진은 못 찍어서 (아쉬운대로) 아름다운 숙소 근처 리젠트 공원 가는 길의 해질녘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반듯반듯한 도로가 참 좋다. 쓰레기통마저 느낌있는 른든


숙소를 옮긴 날은 모두 일찍 잠에 들어 방 사람들과 대화를 못 나누었는데 그날 밤 부시럭 대면서 들어오던 두 명의 소녀들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부산에서 온 매력녀 두 명, 은준이와 수경이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세요??"

진하게 묻어나던 부산 사투리. 딱 봐도 앳된 동생 두 명이었다.

"혹시 프론트에서 수건 받으셨어요? 제가 수건을 밑에서 받았는데, 그냥 주는 줄 알았는데 돈을 내라 하더라구요.. 5파운드나... 그래서 일단 주긴 했는데, 이게 보증금이라서 돌려주는 건지 그냥 내야 하는 건지 제가 못 알아들었어요. ㅠㅠ 혹시 같이 알아봐 주실 수 있어요?"

라고 해서, 카운터에 있는 스탭한테 물어봐서 수건 쓰려면 돈 내야 한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주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ㅋㅋㅋㅋㅋ 조식을 먹으며 같이 이야기하다 보니 너무 재밌었다. 부산대를 다니는 이 귀여운 두 여성은 심지어 같은 과도 아니었다. 다른 과인데 이렇게 유럽여행까지 같이 올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둘 중 누구인지는 비밀이지만)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과로 전과할 것을 준비 중이어서 수업을 듣고 서로 정보를 나누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대학 친구하고 이렇게까지 마음이 잘 맞아서 유럽여행까지 오다니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심지어 우린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얘기가 잘 통해서, 전과를 해도 될는지 솔직히 고민이 되긴 한다/ 공부가 재미있긴 한데 가서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등등 진로에 대한 고민까지 나누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재미있을 것 같은 것을 선택하는걸 최선으로 여기는 나의 가치관과 진심을 담아 조언해주었다. 그리고 사실 재미있게도, 사람은 이미 내 마음속으로 결정은 내려놓고 다른 사람에게 그 결정이 맞다는 맞장구를 듣고 싶어서 으레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법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니까... :) 그 얘기까지 하면서 너의 결정을 믿는다고 응원하니, 사실은 자기도 이미 결정 내렸다며 ㅋㅋㅋ

서로의 일정이 있던 하루였기에 우리는 쿨하게 밤에 숙소에서 보자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그날 밤 돌아와서 또 만난 정민 씨. 정민 씨는 early bird였다. 일찍 잠에 들고 일찍 일어나 여행을 즐기고 있었는데, 이 날 우연히 정민 씨가 우리 학교 티를 입고 자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씻고 나와 부스럭 대다가 정민 씨가 일어나게 되어 같은 학교시냐며 말을 걸었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너무 신기해했다. 이 먼 런던에서 같은 호스텔 같은 방 바로 옆 침대를 쓰고 있다니! 그 날 다녀왔던 세븐 시스터즈 얘기를 하고, 정민 씨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의 여행 얘기를 나누었는데, 자그마치 4달 동안 세계일주를 할 계획이라 하였다! 이미 학부를 졸업했고, 대학원 진학 예정인데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길게 해외여행을 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첫 학기부터 휴학을 때리고 나온 것이 걱정이 되긴 하는데, 나와 보니까 후회되지 않는다고. 역시 이런 무모함을 좋아하는 나는 너무 멋있다고, 잘 하셨다고 박수를 쳤다. ㅋㅋㅋ 제일 첫 여행지인 영국에서는 영화에서 보고 가고 싶었던 도시들을 많이 갈 예정이라 했다. 영국이 막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런던 말고도 다른 도시들도 많이 갈 예정이란 말을 듣고 정말 부러웠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까지도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에 너무너무 부럽고 대단했다. 여리여리한 체구에서 나오는 똑 부러지는 모습이 정민 씨의 여행이 잘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했다.


마지막으로 이틀 후에 우리 방에 배정받은 수현언니. 아마도 4명이 이미 한국인으로 채워져 있어서 호스텔 측에서도 편의상 같은 나라 사람들을 같은 방에 배정하는 것 같았다. 왜냐면 수현언니 전에 한 외국인 아주머니가 들어왔었는데, 인사를 좀 나누고 내 밑의 침대가 살짝 정리가 안 된 것을 보더니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현재 몇 명이나 여기 있는지, 친구인지, 다국적인지 등등? 그래서 한국인이 4명이고 나머지 1명은 어디서 왔는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더니 고맙다며 짐을 다시 싸들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방에 배정받은 사람이 바로 수현언니. 수현언니는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10일 정도의 유럽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런던이 마지막 여행지였는데, 그전에 갔던 파리, 스위스 등 여행지 얘기를 듣는데 진짜 너무 재미있게 여행을 하고 온 것이다. 스위스에서는 즉석에서 한국인 몇 명과 같은 팀을 짜서 차를 렌트해서 다닐 정도였다니! 언니의 친화력과 실행력을 잘 알게 해주는 놀랄 만한 스토리가 많았다. 우리 다섯 명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마지막 날 밤엔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언니가 꼭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인데, 양이 너무 많아서 혼자 다 못 먹으니 같이 먹자고 우리를 모두 모아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었다. 호스텔 방바닥에 돗자리를 펴놓고 (방에 우리 밖에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ㅎㅎ) 수현언니가 다녀온 많은 여행 얘기, 정민 씨의 앞으로의 여행 계획, 은준이와 수경이의 런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 세 시까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지 못했으나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스라이 떠오르는 그 날의 행복했던 기억이다.


- 세븐 시스터즈에서 만난 인연: 친화력 100000 한국인 두 분과 체코에서 온 카트리나

세인트 판크라스 역

런던에 6일이나 있었기 때문에 근교로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내서 다녀올 수 있었다. 옥스퍼드와 브라이튼 중 어디를 갈지 많이 고민하다가, 사진에서 본 자연경관이 너무도 아름다웠던 세븐 시스터즈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기에 브라이튼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가는 곳인데 왜 그렇게 여행객 인척 안 하려고 했는지, 왜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고집하려 했는지 아쉬움이 큰 것 같다. 혼자 하는 여행이었기에 좋았던 점도 물론 많지만, 조금 더 open-minded로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열고 뭔가 같이 하려 했으면 좋았을걸 싶은 아쉬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난 이 사람들은, 혼자 갔기에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인연이라 생각한다.


이 티켓을 가지고 브라이튼 역 근처에서 버스를 타면 세븐시스터즈에 무사히 도착!
한쪽은 Park rail
다른 한 쪽은 Coast Rail

세븐 시스터즈까지 무사히 가는 데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런던에서 출발하는 역에 대한 정보도 확실치 않은 상태로 표를 끊어서 표값을 날리기도 하고, 세븐 시스터즈에 도착은 했는데 해안절벽까지 어떻게 가는지 잘 모르겠어서 길도 잘 못 들어 한참 걷고 또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븐 시스터즈는 시간을 들여 갈 가치가 있다. 이 공원을 걸어가는 동안 한쪽은 Park Rail로 유유자적하게 풀을 뜯는 양과 소들이 잔뜩 방목되어 있는 금빛 들판이 펼쳐져 있다. (but 그만큼 그들의 배설물도 많다. 밟지 않도록 땅도 잘 보고 앞도 잘 봐야 한다.) 다른 한쪽에는 Coast Rail로 에메랄드 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어딜 봐도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하이라이트로 도착한 세븐 시스터즈의 해안 절벽 위는, 가는 동안 겪었던 그 우여곡절조차 전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정도로, 너무도 아름다웠다.


해안절벽에 앉아 열심히 셀카를 찰칵찰칵 찍고 있는 나에게 이어폰을 뚫고 익숙한 언어가 들어왔다.

"저기요~~~!!! 사진 찍어드릴까요?!!"

나보다 약간 더 아래쪽에서 한국인 두 분이 말을 걸어왔다. 뭔가 쑥스럽고 감사한 마음에 "네!!" 하면서 카메라를 부탁드렸다. 덕분에 이렇게 멋진 사진들을 건져주셨다. (앞을 보고 있는 사진은 바람 덕분에 올릴 수가 없다. 흑흑)

남자, 여자 두 분이서 오셨던 거라 당연히 커플일 거라 예상하며

"저도 두 분 사진 찍어드릴게요!" 했더니

"저희 커플 아니에요 ㅎㅎㅎㅎㅎ" 하면서 두 분 사진은 서로 많이 찍어주셨다고 한다. 알고 보니 같이 여행 온 친구가 아니라, 호스텔에서 급작스레 팀을 꾸려 오신 분들이었던 것이다. 원래 다른 분들도 몇 분 더 오시기로 하셨는데 어쩌다 보니 두 분이서 오시게 되었다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여행지 그 자체에서의 이야기에 집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어떤 여행지를 다녔는지, 왜 여행을 오게 되었는지, 여행하면서 뭐가 좋고 뭐가 안 좋은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너무 좋으신 분들 같아서 계속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엉겁결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셋의 사진도 남겨야 하지 않겠냐며! 원격 리모컨을 사용해 이렇게 우리 셋의 멋진 사진도 남겼다.

(이 글을 언젠가 보게 되신다면 꼭 연락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너무 멋진 두 분이었는데)



조금 더 위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던 나는, 런던으로 가신다는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더 위로 올라갔다.

역시나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여행객들도 있었다. 길이 하나가 아니라 그런지 여러 곳에서 오는 거였나 보다. 한 외국인 여자가 지평선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뭔가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말을 걸어보고 싶어서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혼자 여행하러 왔냐, 이 멋진 풍경을 두고 사진은 좀 찍었냐 등등 대화를 트니 (살짝 무서웠던 첫인상과는 달리) 너무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절벽의 꼭대기에서 이렇게 서로 멋진 사진도 남겨주고!

나와 동갑인, 체코에서 온 카트리나는 브라이튼에 2주간 영어 공부를 하러 왔다고 했다. 원래는 공학 쪽을 공부하고 있는데, 영어를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고 했다. 세븐 시스터즈에는 같은 반의 친구가 너무 좋은 곳이었다고 추천해주어서 왔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아침 일찍 와서 꽤 오랫동안 앉아 있었단다. 학교에서는 어떤 수업을 듣냐고 물어보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survey 용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비 오는 날씨와 맑은 날씨 중에 어떤 날씨를 선호하고 이유는 뭔지, 브라이튼과 런던 중 어느 곳에서 일하고 싶은지 등등 사소하면서도 재미있는 질문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브라이튼 시내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현재 유학하고 있는 학생인데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냐고 물은 후, 숙제를 위해 간단한 대답을 부탁했다고 한다. 쑥스럽지 않았냐, 사람들은 대답을 잘 해주더냐고 물어보니 처음엔 너무 쑥스러웠는데 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히 대답해주고 몇 번 하다 보니 금방 익숙해져서 잘 끝냈다고 씩 웃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페이스북 친구까지 맺고, 내가 마지막으로 프라하에 가게 되면 연락하겠다고 하고 브라이튼 역에서 헤어졌다. 행여나 내가 길을 잃을까 브라이튼 역까지 데려다준 그녀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남은 여행도 무사히 잘 하라고, 연락 기다리겠다고.




1) 브라이튼으로 향하는 길. 하늘이 너무 맑고 아름다워서 마음도 덩달아 아름다워졌다.

2) 기차 타고 덜컹덜컹. 내 앞에 귀여운 멕시칸계 꼬마 자매가 앉아있었다. 너무 예뻐서 외국인 친구들 만나면 선물로 주려고 가져왔던 미니 복조리를 내밀었는데, 엄마한테 낯선 사람이 주는 것은 받지 말라고 배웠나 보다. 눈은 너무 갖고 싶어 하는 게 보이는데 차마 손을 뻗지 못했다.

3) 런던과는 다른 매력이었던 브라이튼. 친구 슬기가 칭찬 칭찬했던 바다 마을의 경쾌함과 자유분방함이 물씬 풍긴다.

4) 혼자 여행하니까 내 사진은 그림자로 남기기 :)

5) 드러누워버린 자유로운 영혼들. 나도 눕고 싶었는데... 원피스 입고 갔고요... 절벽도 원피스 입고 탔고요..

6) 이렇게나 큰 개들이 많은 영국! 너희도 여행 왔구나! 기차에도 튜브에도 사람과 함께 아무 제지 없이 탑승한다.

7)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이유는 실제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셨었는데, 잘 해결되셨기를. 너무 매력적인 페이스의, 나보다 훨씬 어렸지만 어른스러웠던 그녀의 고민이 남은 여행을 방해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8) 런던에 도착해 그냥 숙소에 가기 아쉬워 걷고 또 걷고. 흐린 날 봤던 타워브릿지 맑은 날이니까 또 보러. 그리고 마지막 날 또 간 것은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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