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유니콘이 태어나는 곳, Why YC>를 읽고
'스타트업', '스타트업 업계'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된 지 어느새 2년이 훌쩍 흘렀다. 스타트업에 입사해 2년 동안 매일같이 고군분투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스타트업을 보고 듣고 느끼고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크라우드펀딩을 중개하는 플랫폼인데, 엄청나게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미리 선보인다. 또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IR을 게시하기도 한다.
그중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는 후자다. 우린 그것을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이라 한다. 이를 통해 보통 VC(벤처캐피털)이나 엑셀러레이터 단체가 진행하던 스타트업/기업 투자를 개인도 참여할 수 있다.
"투자 잘 받으시려면 IR(Investor Relations: 기업이 투자받기 위해 작성하는 자료)을 잘 작성하셔야 해요. 이 부분을 더 강조해볼까요?"
"투자자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할 거예요. 대답은 미리 준비해두셔야 해요."
"크라우드펀딩은 결국 개인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잘 설명해주셔야 해요. 제가 투자자라 생각하고 먼저 설득시켜보세요."
담당 기업이 정해지면 투자를 잘 받을 수 있도록 기업과 함께 펀딩(Funding) 준비를 한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지고 나도 기업의 일원이 된 것 마냥 함께 준비를 해도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투자자들의 깊은 질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VC는 기업에 투자할 때에 어떤 질문들을 할까? 기업의 어떤 부분을 보는 거지? 엑셀러레이터들이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하는 역할은 뭘까?'
투자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직무다 보니 매일같이 달고 사는 질문들인데, 조금은 답을 찾을 수 있을만한 인사이트가 담긴 책을 발견했다. <유니콘이 태어나는 곳, Why YC>라는 제목으로 북저널리즘에서 발간한 콘텐츠다.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다. 여기서!)
Y Combinator, YC라는 엑셀러레이터를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스타트업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2005년에 폴 그레이엄을 비롯해 총 4명이 시작한 YC는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명성을 지녔다. 실리콘밸리 진출을 꿈꾸는 스타트업에게 "너 하버드나 스탠퍼드 나왔어? 아니면 YC라도 가야지."라고 할 정도로.
YC는 1년에 수백 개에서, 많으면 1,000개의 스타트업 투자를 검토한다. 그리고 매 학기 신입생 뽑듯 스타트업들을 선발해 동일한 기업가치 산정 후 투자를 진행한다. (12만 달러를 투자하고 7%의 지분을 가져감) 재미있는 것은 처음 seed 단계에서만 투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라운드인 시리즈 A나 시리즈 B에서도 7%의 지분을 유지하면서 추가 투자를 염두에 두는 엑셀러레이팅을 진행한다.
YC의 선택을 받은 5개의 한국 스타트업 (미미박스, 센드버드, 미소, 브레이브모바일, 심플해빗)의 대표 5명을 각각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YC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던 이 콘텐츠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바로, 끊임없이 '성장'에 대해 강조한다는 내용이었다.
5명 모두 YC에서 겪었던 경험이 다양한데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면, 엑셀러레이팅 파트너들이 3개월 동안 그들에게 끊임없이 '성장'에 대해 외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만나자마자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묻는 질문이 "어제는 전 날 대비 몇% 성장했어?"라는 점, YC 패밀리의 온라인 공간 북페이스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도움을 요청한 것에 YC에서 트레이닝하고 있는 중인 창업가가 대답을 해주면 "지금 이럴 시간 있으면 가서 일이나 더 해."라고 말한다는 점.
그러다 보니 YC에 있는 기간 동안 안일해질 틈이 없고 그 기간 동안 철저히 성장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리듬을 바탕으로, 돌아와서도 흐름을 잃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들을 뽑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니 고성장 가능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기업들에 내로라하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YC가 투자할 스타트업을 선정하기 위해 면접에서 하는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엿볼 수 있었는데, 딱 세 가지만 소개해보려 한다. (더 궁금한 분들은 콘텐츠 전체를 읽는 것을 추천!)
1. 당신이 하고 있는 사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세요.
나도 대표님들에게 수없이 하는 말 중 하나고, 투자 콘텐츠디렉터로서 가장 고민을 많이 하고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YC의 파트너들은 회사를 소개할 때에 나이 든 부모님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결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빅데이터 기반 기술을 통해 생활 개선을 하는 O2O 서비스 플랫폼"이 아니라 "간편하고 믿을 수 있는 가사도우미 서비스 회사"로 직관적으로 소개해야 한다. "매칭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와 공급자를 잇는 마켓 플레이스"가 아니라 "피아노 선생님, 이사 전문가, 웨딩 플래너가 새로운 고객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라고 거창한 표현을 다 떼고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2. 실패해 본 적 있으세요?
실패 경험은 숨길 필요가 없다. 실패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실패 경험에서 배운 점은 무엇인지, 새로운 사업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생각인지에 대해 스스로의 생각이 잘 정리가 되어있다면 오히려 그 실패 경험은 단점이 아닌 강점이 될 수 있다. 이 질문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꼭 스타트업이 투자받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개인으로서도 많이 받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입시, 취업 등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면접 자리에서 항상 나오는 단골 질문인 것처럼. 기업이 투자받는 자리에서도 결국 사업을 이끌어가는 기업의 대표, 즉 '사람'이 중심이기에 실패 경험도 자산으로 삼아 극복해내는 스타트업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3. 당신의 서비스로 일상(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가장 인상적인 질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drive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는 핵심 이유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거쳐 서비스나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삶과 일상이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도록 기여하려는 의지, 비전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비전을 향한 의지가 또렷할수록 성장의 가속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YC에서도 주요 포인트로 보고 있고, 면접 자리에서도 날카로운 질문들로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을 이뤄내는 스타트업을 '유니콘 기업'이라고 한다. 요새는 기업가치 10조 원 이상인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기에(에어비앤비, 드롭박스, 핀터레스트, 스냅챗 등) 이들은 따로 유니콘에서 따로 떼어 '데카콘'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스타트업들의 잘 알려진 성공 스토리는 꿈과 희망을 준다.
하지만, YC 멤버들 사이에서 허심탄회하게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행사에서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더럽고 험난하다'. 오피셜로 전해지는 성공신화와는 다르게, 사업이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듣고 있으면 위로 아닌 위로가 될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럽고 험난한 여정을 잘 헤쳐나간 사업가들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 YC 모임에 초청받은 에어비앤비의 창업자들은(에어비앤비도 YC 출신이다) '창업한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들처럼 눈을 반짝거리면서' 질의응답 시간을 3시간이나 이어나갔다고 한다. 보통 30분~1시간 내에 끝나는 질의응답인데도 계속 후배 창업가들과의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이다.
YC에서 면접을 볼 때에 실적이 어땠는지, 전 월 대비 당 월 얼마나 성장했는지, 실제로 고객들이 서비스를 사용했는지에 대해 중요하게 보지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사람'이다. 이 책에 등장한 5명의 창업가들은 현재 이끌어 가고 있는 사업에 대해 진지하고 치열하게 임하는 중이다.
기업의 핵심 구성요소가 '사람'이니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항상 가장 당연한 것을 놓치고 지나갈 때가 많다. 조금 더 집중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기에! 스타트업에 계신 분들이시거나 사업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