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United Kingdom, page 1
아직도,
현솔이가 배웅해주고 혼자 들어가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 혼자 타보는 비행기에 어찌나 떨리던지.
"와 내가 드디어 혼자가 되었네. 비행기 추락하지는 않을까. 나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겠지." 등등 별의 별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혼자 떠난다는 자유와 설렘은 잠시, 초조함과 무서움, 두려움이 엄습하던 그 때의 그 순간은 아마 평생 잊기 힘든 기분일 것이다.
에미레이트 항공을 탔다. 비행기 표 예매할 때에는 아무 일 없던 중동이었으나 떠나기 한 달 전 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가 뒤집어졌었다. 두바이를 경유하는 항공 티켓을 바꿔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과 초조함이 가득했지만 곧 가라앉았고 나는 무사히 출발할 수 있었다.
하늘 위의 호텔이라는 별명을 가진 에미레이트 항공기는 그 명성에 걸맞게 아주 좋았다. 다만 내 좌석 근처 아기들의 울음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7시간 동안 하늘을 날아, 두바이에 도착했다.
두바이에서 경유하는 시간은 3시간 정도였는데,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다. 잠시 벤치에서 짐을 정리하던 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한국인이세요?"
오! 한국인이었다.
나처럼 런던에서 유럽 여행을 시작한다는 S군은 요리를 전공하고 있다 했다. 이탈리아 음식에 특히 자신있다며 이탈리아에 있는 유명한 음식점들은 전부 갔다올 계획에 들떠있었다. 스페인 음식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스페인 음식도 기대중이라며. 시카고에서 공부하고 있는 여자친구와 롱디를 하고 있으며, 여자친구가 여러 외국어를 잘 한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살다 와서 러시아어도 잘 한다는 말에 내 전공이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이라는 이야길 하며 신기하다고 했다. 러시아어를 잘 하냐길래 아마도 살다오신 여자친구에 한참 못 미칠거라며 손사래를 쳤다. S군은 여자 혼자서 여행하는 것이 용감하다며 그의 친구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100일째 세계여행을 하고 있단다. SNS 상으로는 좋은 척을 하고 있지만 S군에게 귀띔하길, 30일이 딱 좋다고. 그 이상은 힘든 일이 더 많고 한국이 너무 그립다고 했단다. 나도 여행 일정이 3주가 넘어가면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던 것 같다. 여행을 좋아한다던 그는 자연풍경 여행 체질인 내게 네팔을 추천해 주었다. 개발되지 않은 자연환경으로 가득 찬 곳의 이야기가 들뜨게 했다.
알고 보니, 미리 다음 비행기 대기 장소에 들어가 있을 수 있었다. 런던 행 비행기 출발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았을 때 안쪽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들어가자마자 두바이 공항의 유명한 면세점과 화려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인천 공항에는 미치지 못했다. 인천공항 최고.
미리 들어와서 구경이나 할걸, 싶었다가 어차피 뭐 살 것도 아닌데 거기 안 앉아있었으면 S군의 이야기도 듣지 못했겠지 싶어 오히려 그 편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S군은 거의 12시간 동안 다음 비행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분명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을거라 위로해 주며 작별 인사를 나눴고, 나는 히드로 공항 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한국에서 출발했을 때보다 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진짜 다국적 사람들. 이제 한국인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비행기에서 거의 잠을 청하지 못 한 나는 일기를 쓰다가 배낭에 걸쳐 잠이 들었다. 그 때 일기장을 보면 지렁이 글씨로 "눈 좀 붙여야지...졸려....ㅠㅠ"라고 쓰여있다. 진짜진짜 졸렸나보다.
두바이 행 비행기에서의 옆자리에는 중동 남자 사람이 탔었는데, 런던 행 비행기에서의 옆자리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외모의 여성이 탔다. 30대 후반-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커리어 우먼 포스가 나는 여성이었다. 런던에 착륙할 때즈음 그녀에게 런던에 여행하러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환히 웃으며 비즈니스 트립이라 대답하며 어디서 왔냐 물어보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1년 정도 일한 적이 있다며 '콜론'에서 유통을 담당했었단다. 한국이 친근하다며 무슨 공부를 하냐고도 물어보아서 전공 얘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그녀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이었다! CIS 국가 출신이라 더 반가워했더니 러시아어 열심히 하라고 북돋아 주었다. 러시아 작가들 중엔 누굴 좋아하냐고 물어보는 그녀의 질문에 진부하지만 푸쉬킨을 답했다. 체홉의 '바냐 삼촌' 이야기도 잠시 했다. 런던에 이틀을 머문다는 그녀는 런던 참 좋은 도시라며 재미있게 여행하라며 행운을 빌어주었다.
나중에 현솔이랑 페이스타임을 하며 "'콜론'에서 일을 했었대! 우리나라에 콜론이란 기업이 있나?" 했더니 "코오롱이네!" 라는 것이었다. 콜론=KOLON=코오롱 ㅋㅋㅋㅋ 깜짝 놀랬다 ㅋㅋㅋㅋ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뭔가 허를 찔린 느낌.
와 나 내렸다.
런던이다. 런던이다? 런던이다!! 내가 런던이라니?
비행기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곳곳에는 진짜 런던스러운 것들이 있었다. 혼자서 연주되고 있는, 게다가 건반이 눌리고 있는 피아노라든지.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 온 유심칩을 꺼내 바꿔꼈고 공부했던 오이스터 카드 구입을 시도했다. 카드를 이용하려 머신 앞에 섰는데, 핀번호를 잘못 입력해 카드가 정지되었다. 6자리 입력하게 생긴 공간 안에 앞뒤로 00을 붙여가며 시도했는데 3번이 다 틀렸단다. 모든 카드가 먹히지 않기 시작 + 멘붕.
관리하는 아저씨께 물어보았더니 4자리만 입력하면 됐을거란다. 속상한 마음을 부둥켜 안고 창구에서 현금으로 오이스터 카드를 구입했다. 그 때는 첫날부터 카드가 정지되었나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램버스 노스에 위치하던 앨리스 런던 숙소는 소문대로 찾기 어려웠다. 바로 앞에서 30분은 헤맨 것 같다. 길치 인증... 무사히 도착한 나는 정지된 카드를 풀기 위해 숙소 안에 있는 컴퓨터와 하나카드사로의 전화연결 등 온갖 방법을 이용했다.
다행히도, 나는 D 아주머니를 만났다. 따님과 함께 유럽여행중이시라던 그녀는 런던을 거쳐 파리가 마지막 도시라고 하셨다. 어쩌다 카드가 정지됐냐 물어보셔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카드로 사려던 사람들 중에 정지된 사람들이 많다며 웬만하면 현금 결제가 나을거라고 하셨다. 하나카드사 전화번호도 알아봐주시고, 카드에 적혀있는 번호로 연결이 되지 않자 내 핸드폰으로 안 걸리는 걸 수도 있다며 친히 아주머니 핸드폰을 빌려주시고 (국제 전화라 요금이 많이 나올텐데),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대사관에 가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내가 멘붕 상태에 빠져 있자 딸기와 방울토마토를 주셨고, 마지막 날 떠나기 전에는 여행하다 보면 한국 음식 그리울거라며 컵라면까지 선물로 주고 가셨다.
카드는 무사히 당일에 해결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카드 정지가 영구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금방 해결될 수 있었던 사소한 일이었지만, 그 때 D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낯선 곳에서 첫 날부터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다.
따님과 마지막 일정 잘 마치시고 도착하셨기를.... :)
그렇게 멘붕을 겪었던 나는, 그 숙소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었다.
개인 오두막 식으로 되어 있는 앨리스 런던 B&B는 개인룸이 자동으로 잠기는 시스템이다. 내가 도착한 다음 날 온 R 언니는 그걸 모르고 열쇠를 방 안에 둔 채로 나와서 방에 못 들어가고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있었어서, B&B 주인에게 연락해 마스터키를 찾았고 R 언니가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30대였던 R 언니는 여름휴가중이라고 했다. 런던이 첫 도시였고, 나의 일정과 비슷하게 주말에는 프리마켓을 가려고 하길래 우리 괜찮으면 같이 가자며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조식을 먹었었다.
아쉽게도, 우린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함께 가지 않았다. 나는 중간에 숙소를 한 번 옮겼기에... 아쉽다. 그 언니도 좋은 인연이었을텐데. 함께 갔으면 더 재밌을 수도 있었을텐데.
처음 접한 템즈 강은 압도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기서 특별히 만난 이들은 없지만 영국 여행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런던의 랜드마크들
그렇게,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