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주저, 망설임, 후회
대학원 OT날. 단상위 총장님께서 한창 환영사를 하고 계셨고, 내가 앉아있는 자리는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 앞쪽의 딱 중간자리. 불안함에 눈치 보며 고개를 돌려보아도 앞 의자와 다리사이의 간격은 10cm도 안돼 보인다. 또 뒷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인지 총장님 얘기를 경청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후회와 고뇌, 그리고 원망. ‘그러게 왜 그렇게 물을 마셔댔을까. 방광이 예민한 거 아는데 가장자리에 앉을걸. 미치겠네!’ ‘아, 그냥 화장실 가 참아. 못 참을 것 같은데. 미치겠네!’ ‘아 무슨 환영사가 저렇게 길어. 저런 건 환영사에 왜 넣어. 미치겠네!’ 결국 나는 총장님이 단상을 내려가심과 동시에 사람들의 다리를 가로질러 시선을 뚫고 나간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시원함 뒤에 약간의 억울함이 몰려온다. 어차피 갈 거 그냥 갔다 왔으면 됐을 것을.
우리는 불필요하게 자주 망설인다. 수업 첫날 옆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기 전에, SNS에 상태 글을 올리기 전에, 옷을 사기 전에, 번지점프를 하기 전에, 야식을 먹기 전에, 대학원 원서를 집어넣기 전에, 브런치에 글을 개시하기 전에. 어떤 고민들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반면에 어떤 고민들은 안 하면 끝까지 후회로 찝찝하게 남는다. 꼭 화장실에 안 다녀온 것처럼. 하지만 웃프게도 생각보다 상황은 우리가 둔 경우의 수보다 훨씬 단순하다.
신중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한번 더 고민해서 나쁠 건 없다. 아니, 더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고민이 나와 남에 대한 배려가 아닌 그저 남의 시선이 두려워서라면, 남들은 생각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한테만 내가 세상의 중심이지 남들에겐 그저 잊힐 얼굴, 최대 몇 번 비웃고 넘길 얼굴이다.
그냥 해보면 어떨까. 그럼 적어도 쓸데없는 고민에 대한 억울함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게으름이란 죄악과 맞서 싸워야 하는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잃는 것은 많이 없을 것이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다재다능 지식인 조승연 작가님이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되게 여기저기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라는 MC들의 질문에 “저는 그냥 해요”라고 답하신다. 물론 사람들 중에 조승연 작가님처럼 ‘유달리’ 다재다능하고 세상사에 관심이 많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작가님 말씀처럼 그냥 큰 고민 없이 궁금한 거 검색 한번 해보고, 책을 써 보고 싶다면 한번 써보고, 맘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작업 한번 걸어보고,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으면 한번 해본다면 자연스럽게 다채로운 경험이 인생철학에 녹아들고, 풍부한 감정이 담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매번 망설이다가 해보지 않고 나 자신을 정당화하는 비겁하고 어리석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