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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an 08. 2023

알고리즘은 유혹한다

유튜브와 애플뮤직 그리고 나의 삼각관계

어느 날 아이폰 설정 앱을 열었더니 메시지가 떴다.


'안녕 사용자. 난 애플뮤직이야.'

'어, 안녕? 그런데 난 구독에 관심이 없는걸.'

'그래도 난 3개월 무료야. 써보지 않을래...?'

'하지만 난 유튜브 뮤직에 만족하고 있는걸.'

'그, 그래...'


3개월이 지났다.


'안녕 사용자. 애플뮤직이야. 나에게 관심없다고 했지만 이건 어때? 6개월 무료야.'

'아......'


반 년 무료라는 성의. 유튜브가 알면 화내겠지. 하면서도 나의 손가락은 구독을 눌렀다.


그렇게 우리의 삼각관계는 시작되었다.


애플뮤직은 애플의 이름에 걸맞게 간단하고 깔끔했다. 신보를 제일 먼저 물어다주는 것은 물론 나의 아이튠즈 보관함을 분석해서 좋아할 만한 음악 목록을 제공했다. 앨범과 신보 이미지의 아름다움과 해상도는 최고였다. 


'안녕 사용자. 모닝커피에 맞는 음악 들려줄까.'

'밤이구나. 잠들기 좋은 음악이야.'

'요리할 때 듣는 음악이야. 제임스 브라운으로 시작해.'

'디페시 모드를 좋아하는구나. 이건 어때?'


동일한 스타일의 음악을 묶어주는 능력도 예상 외로 뛰어났다. 가끔 끼워주는 K팝은 빼고.


'6개월 구독기간동안 음악을 네 보관함에 넣어줄게.'

'아, 고마워.'


그동안 나의 음악을 담당해온 유튜브는 잠잠했다. 난 그가 화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야, 이거 들어봐.'

'.......!'


유튜브가 내게 던진 것은 옥티켄이었다. 몽골의 락밴드 옥티켄. 더 후를 여러 번 들었던 나의 취향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유튜브는 애플뮤직과 달랐다. 애플뮤직은 나의 취향을 종합해서 좋아할 만한 음악의 목록을 만들어주었다. 그렇지만 유튜브는 수많은 나의 영상 기록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을 뽑았다. 그리고 거기에 딱 맞는 것을 골라주었다.


'아... 유튜브. 고마워.'

'뭘. 보관함 같은 건 난 몰라.'


그렇지만 유튜브의 단점은 여전했다. 광고가 많았고, 검색하면 음악 외적인 것들을 너무 많이 보여줬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듣고 싶은데 그의 라이브 공연 광고까지는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 것을 구분하는 세심함은, 그에게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 건 네가 알아서 걸러.'

'....응.'


애플뮤직은 달랐다. 사카모토 류이치 최고의 넘버들을 무손상 음질로 가져왔다. 마치 최고급 레스토랑 같았다. 그에 비해 유튜브는 광장 시장이나 오래된 헌책방 같았다.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아.'


그래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는다고 나는 어느 새 애플뮤직의 세심함에 끌리고 있었다. 아티스트의 이름을 애플뮤직의 검색창에 넣는 빈도가 점점 높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야.'

'응?'

'애플에는 이런 거 없지.'


유튜브가 두 번째 직구를 던졌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 음악 밴드였다.

악보까지 복원해서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흐흐흐. 안 듣고는 못 배길거다.'


나의 손가락은 그 순간만큼은 내 것이 아니라 유튜브의 것, 어느 새 채널 구독을 누르고 있었다.


3개월동안 이어져오던 애플뮤직과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메인스트림 음악에는 애플뮤직이 우위를 가진다. 하지만 그 바깥에도 음악은 많았다. 유튜브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메인스트림이란 의외로 폭이 좁다.


나는 애플뮤직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검색창에 'mirror'라고 쳤다. 내가 기대한 것은 홍콩의 K팝 스타일 보이그룹 미러였다.


나오지 않았다.


'우리 관계를 생각해봐야겠어.'

'그러지 마. 나에게도 오래된 음악들 제법 있어.'

'응.'

'홍콩 아이돌 미러는 없지만, 등려군은 있어.'

'그건 있어야지.

'사카모토 류이치 <마지막 황제> OST도 있어. 들려줄까?'

'좋아.'


<마지막 황제> OST 음질은 최고였다. 그렇지만 나의 마음은 조금씩 떠나가고 있었다.


'그래, 내 취향을 찾는 여정의 재미를 놓칠 수는 없지. 그래도 나의 가장 다크한 면을 아는 건 역시 유튜브야.'


삼각관계는 이렇게 정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다시 애플뮤직이 말을 걸어왔다.


'오랫동안 널 지켜봤어.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고민했어. 바로 이거야.'


그가 내민 것은 오스발도 푸글리에세였다.

탱고의 거장, 아스토어 피아졸라의 음악성을 넘어선다는 평가마저 받는 푸글리에세. 아르헨티나인인 프란시스코 교황이 가장 좋아한다는 탱고 음악가!

단순히 대표곡 몇 곡이 정리된 수준이 아니었다. 앨범 수십 개에 단정하고 강렬한 이미지가 일일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 음질. 음질은 애플뮤직에서 논할 거리가 못 된다. 


'...구독 연장할거지?'

'아...'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 마. 나에게 정착했으면 좋겠어.'


푸글리에세를 찾아다 준 애플뮤직이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유튜브에게도 카드가 있었다.


'야. 프리미엄 3개월이야.'

'......!'

'광고 없지, 백그라운드 재생 가능하지, 요샌 음질도 괜찮잖아.'


하....

우리의 삼각관계는 당분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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