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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an 25. 2023

금산 그림책 마을에 다녀왔어요

레드스쿨 아이들과 '슬픔, 공감, 이해'를 이야기하다

'금산 가본 적 있어?'

'아니.'


충남 금산에는 처음이었다. 강연 요청을 받고 지도 앱을 켰다. 차로 달리면 딱 두 시간 걸리는 곳. 그런데 그림책 마을이라는 곳이 너무 예뻤다. 그림책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대안학교 아이들도 처음이다. 


출발하는 날 아침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하얀 밤의 고양이>를 읽은 10대 아이들을 만난다니 심장이 살짝 불규칙하게 뛰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 줄까.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될까. 강연 자리는 끝나면 내가 받는 게 늘 많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할지.


'다음 책 잘 써야지.'


<남쪽으로 튀어!>라는 소설 제목처럼 내내 남쪽으로 달렸다.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 적어지는 차량들. 아이폰 뮤직 보관함에 넣어둔 앨범 두세 개를 듣고 나자 금산으로 빠지는 길목이 나왔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공장들이 있는지 가끔 큰 차들이 오고갔다. 이런 길은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시속 30킬로미터를 넘으면 곤란하다.


도착했다. 약간 시간이 남는 상태. 마침 레스토랑이 있어 들어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책방이 결합된 스타일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책장 옆에 자리를 잡았더니 예쁜 그림이 웃어주었다.



작가와의 만남 강연은 즉문즉답에 가깝다. 책을 쓰게 된 동기, 창작의도, 집필과 출판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면 청중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들은 원석에 가깝다. 작가는 즉석에서 그 원석을 다듬어서 다시 청중들에게 던져준다. 쉽지는 않지만 익숙해지면 작가 입장에서 정말 재미있는 자리가 된다. 새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때도 있다.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오늘 자리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보았다.



내일로 끝나는 캠프다. 좋은 마무리에 도움되는 자리여야 할텐데... 담당 선생님을 만나 강연 장소로 갔다. 고상하게 꾸며진 음악감상실이었다. LP와 CD가 잔뜩 쌓였고 진공관 앰프도 있었다. 바닥에 깔린 카펫에 아이들이 들어와 앉았다.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마음먹었다. 오늘은 약간 산만해지기로.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은 분위기로. 잠깐 졸았다 깨어도 다시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여러분의 부모님과 선생님은, 여러분이 꽃길만 걷기를 바랄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할게요.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거에요. 그렇기에 여러분이 <하얀 밤의 고양이>를 읽었을 거에요. 이 이야기는 좀 어둡거든요. 슬프기도 하고요.  


세상에 슬픈 이야기는 많지는 않아요. 슬픈 이야기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도 확실하진 않지요. 재밌거나, 웃기거나, 무서운 이야기라면 바로 뭔가 떠오르죠. 그런데 슬픈 이야기라면, 그만큼 명확한 느낌이 오진 않아요. 누가 죽거나 다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든가. 그런 스토리가 떠오르죠. 부정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슬픈 이야기를 많이 읽지는 않아요. 


하지만 슬픈 이야기는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거예요.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고통을 피하기를 원하는데 말이죠. 고통을 연상시키는 슬픈 이야기, 슬픈 동화와 민담들은 왜 존재할까요. 


왜냐하면 슬픔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짊어진, 생로병사, 사랑하는 사람이나 대상과 언젠가 헤어질 운명을 일깨우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의 운명을 가지고 있고, 사는 동안 어떻게 지내든 피안의 세계에서 다들 만날 공통적인 운명도 가지고 있어요. 게다가 살다 보면 내 노력만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 순간들을 만나게 되요. 그건 세상과 인생이 정말로 복잡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때 우리는, 우리 힘만으로 되지 않는 운명을 느끼고 한없이 작아져요. 


그때 느끼는 감정이 슬픔이에요. 실패하거나,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 느끼는 게 슬픔이 아니에요. 내가 작다는 것. 무력하다는 것을 실감할 때. 거대한 운명과 세상 앞에서. 그것이 슬픔이지요.


그렇기에 슬픔은 우리를 묶어주고,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게 해 줘요. 그렇기에 공감은 나와 가깝거나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대상과도 충분히 가능해요."  


화면 속의 하얀 고양이 그림은 오늘따라 유난히 빛나 보였다.


책 이야기, 슬픔과 공감, 이해 이야기를 하고, 40대 할미(?)답게 청소년들에게 평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여러 모로 불안할 시기일 거예요. 그런데 그건 당연한 거예요.

일단 인터넷에 나오는 이야기는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뉴스는 30%, 커뮤니티나 SNS는 10%정도만 진실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을 거예요.

MBTI 유행도 그와 맞물려 있다고 봐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나'에 대해 너무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인스타그램이 유행하고 셀카들이 쏟아질 때부터 선생님은 조금 걱정했어요.

셀카란 결국 거울을 보는 행위거든요. 요즘 사람들은 거울 잘 안 갖고 다니죠? 거울 볼 일이 있으면 선생님도 휴대폰 셀카 켜서 봐요.

그런데 사실은 거울을 너무 많이 보면 좋지 않아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나르시스 이야기 모두 알 거예요. 나르시스는 자기 모습에 너무 빠져서 죽게 되지요.

거울을 너무 많이 보면 정신적으로 좋지 않다는 뜻이지요.

선생님은 셀카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그렇다고 아예 보지 말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요. 적당히 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알기가 힘들지요?

그때 어른들 도움이 필요한 거예요.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경험으로 알거든요."


"나에 대해 너무 생각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 즐거워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파고들다 보면, 내가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요새는 인생도 길어요.

좋아하고 즐거운 것을 되도록 많이 만드세요."


주어진 시간이 끝나고 소파에 둘러앉아 사진을 찍었다. 옆 자리에 앉을까 주춤거리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기어올라와요!"

"기어올라!"


다른 아이가 말을 받자 기분이 좋았다.


"그럼, 기어올라야지."


아이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긴장으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난다.

오늘도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많았다.


'그래, 대안학교 아이들이 나오는 청소년 소설을 써 보면 좋겠다.'


집에 돌아오자 꽉 찬 마음, 텅 빈 뱃속.

행복한 날이었다.

언젠가 다시 그림책 마을을 조용히, 살짝 들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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