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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un 12. 2023

<잔느 딜망>-가정=감옥의 인류학적 보고서

2022년 <사이트 앤 사운드> 지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1위 : 


* 어둠 속에서 조용히 볼 영화가 아니다. 틀어놓고 토론하면서 보는 영화다. 시퀀스마다 분석거리가 넘친다. 혹자는 다큐멘터리 같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장센, 동선, 조명, 연기, 표정, 시선 등이 모두 정확하게 계산되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남자가 머무른 시간은 감자를 삶는 시간과 일치한다. 현실에서 이러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 잔느는 집과 그 주변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 대신 환경을 극도로 통제한다. 청소와 정리 상태는 강박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강박은 강한 통제를 당할 때 역설적으로 발생한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 놓이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그 스트레스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잔느는 가정이라는 감옥에 갇힌 수형자이다.


* 강제수용소 증언에 따르면 수형자들은 반복적인 정리와 청소를 강요받으며 때로는 무의미한 노동에 투입된다. 청소와 정리의 강요는 수형자들이 개인 물품을 뜻대로 관리하는 지극히 사소한 자유까지 박탈하는 수단이다. 노동 투입은 그 자체로 착취 목적이지만 수형자들의 시간을 빼앗기 위해서도 무의미한 노동 투입이 의도적으로 이루어진다.


* 이러한 환경에 오랫동안 놓인 수형자들은 석방 이후에도 비슷한 습관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극도로 깨끗한 환경, 최소한의 물품, 물건의 정확한 자리, 자잘한 일들의 복잡한 순서 등. 형제복지원 생존자 중에도 죽을 때까지 이불을 정확한 사각형으로 개어 포개놓고 방바닥을 먼지 한 톨 없이 닦는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러한 습관의 유지는, 모든 자기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한 조각의 자유를 창출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 이러한 극도의 자기 통제는 에너지를 아끼는 효과도 발생시킨다. 잔느도 동선을 최소화하면서 에너지를 극도로 아낀다. 두 번째 날 성매매를 한 남자가 나갈 때 복도가 어둡지만 불을 켜지 않는다. 돈을 받을 때에만 잠깐 불을 켠다. 액수가 맞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확인하자마자 잔느는 불을 끈다.


* 잔느의 나머지 일상도 수형자들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시간은 노동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자거나 쉬는 시간은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불을 끄고 자는 장면이 즉각 아침에 일어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관객은 수면으로 긴장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전날의 긴장은 다음 날로 누적된다. 질서를 유지하려는 강박은 일시적인 통제감을 주지만 궁극적으로는 압박감을 더한다.


* 인터넷의 한 줄 평을 빌리면 :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



시선 :


* 주인공은 대부분의 인물과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아들과도 눈을 거의 맞추지 않고 미소도 거의 없다. 그런데 카페에서 차를 갖다주는 종업원과 시선을 맞추고 미소도 짓는다(이 부분에서 믿기지 않아 돌려보며 확인했다).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때 비로소 잔느는 인간다운 면을 보인다. 


* 두 번째 날과 세 번째 날에 갓난아기를 맡는다. 두 번째 날에는 갓난아기와 거의 접촉하지 않지만, 세 번째 날은 다르다. 아기를 들고 눈을 맞추며 적극적으로 어르고 달랜다. 하지만 아기는 계속 운다.


* 강제수용소는 수형자들간의 시선교환을 포함한 교류를 금지한다. 



아들 : 


* 잔느의 아들은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아직 학교에 다니며 용돈을 받는다. 아들은 집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으며 어머니의 봉사를 받으며 유일하게 집안일을 할 때는 잔느와 소파형 침대를 펼 때이다. 식사 중에도 대화를 나누거나 눈을 맞추지도 않는다. 잔느의 도움 아래 보들레르의 시를 암기하면서 R발음으로 놀림받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단서들을 모아 보면 아들은 아무래도 장애가 있는 것 같다. 약간의 자폐 같기도 하다. 일상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사회적인 독립은 어려워 보인다. 잔느가 구두를 고치러 갈 때 구둣방 주인은 "아들이 있어서 좋죠"라고 말한다. 사실 이 말의 의미는 반대이다. 아들 때문에 힘들겠다는 위로이다.


* 이 집은 방이 하나이며 아들은 거실에서 잔다. 아들의 물건은 늘 가방 속에 보관된다. 즉 외부인-남자들이 오면 이 집은 주인공이 혼자 사는 듯이 보인다. 잔느 외의 사람만 사용하는 물건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정으로 보아 아들은 오래 전에 독립했어야 하는 존재이다. 


* 저녁을 먹고 잔느는 아들과 같이 외출한다. 이 외출은 의무적이다. 똑같은 밤 장면 두 컷으로 처리된 이 외출의 이유는 추론하기 매우 어렵다. 의사의 권유일수도 있고, 저녁식사 후 집안을 잠시라도 비워야 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 잔느는 아들의 코트를 수선하러 간 가게에서 이례적으로 긴 말을 늘어놓는다. 동생이 조카를 데리고 집에 머물렀을 때 소파형 침대를 사용했고, 그때 아들 실비앙은 어려서 안방의 침대에서 잤다는 이야기다. 아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엄마의 평범한 수다로 보이는 이 이야기는, 맞는 단추가 없어서 입히지 못하는 아들의 코트라는 장치 위에서 이루어진다. 즉 아들은 성인이 되어도 코트를 입지 못한다. 잔느에게 아들은 성장하지 못하는 아이이며 그래서 어른이 되어 입어야 할 코트-적절한 의상-사회적 신분을 갖지 못한다. 


* 그날 잔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맞는 단추를 찾지만 실패한다. 전차까지 타고 멀리 나가지만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 어른이 되면 입히려고 산 코트에 맞는 단추가 없다 : 이것은 아들 실비앙의 장애를 상징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적이라든가, 미니멀리즘적이라는 분석은 빗나가는 것이다. 코트 단추를 찾으려는 잔느의 노력에는 아들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렇지만 아들은 사회적으로 독립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잔느의 결혼 :


* 아들과의 대화 / 캐나다에 사는 잔느의 동생이 보낸 편지에서 잔느의 결혼에 대해 추론할 수 있다. 남편 죠지는 미국인으로 추정되는데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잔느의 동생은 캐나다에 살고 있으며 재혼을 권한다. 원래 죠지가 죽지 않았다면, 잔느는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잔느와 잔느 동생은 각기 (가부장제 아래 여성의)실패한 결혼 / 성공한 결혼의 모델이다.


* 아들은 식사 중에 책을 읽는 습관이 있으며 잔느는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아들의 습관은 요즘 아이들의 휴대폰 중독과 비슷해 보이지만, 잔느의 남편이 항상 읽을 거리를 들고 있었다는 것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잔느와 남편은 마음으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기에 남편은 소통을 피하기 위해 늘 책을 봤을 수도 있다). 잔느와 아들의 자기 전 대화-아들은 자기 전에 늘 잔느에게 말을 건넨다-를 통해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이 아니라는 것이 관객에게 알려진다. 잔느는 자신이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며 젊음을 매개로 한 거래라는 사실을 아들에게 숨기지 않는다. 아들의 나이를 염두에 두면 부모의 그러한 결혼에 거부감을 느낄 때도 지났다. 그렇지만 남편은 일찍 사망했으며 장애가 있는 아들-재혼의 걸림돌-을 남겼다. 거래는 실패했다.


* 잔느는 아들에게 여성은 사랑하지 않는 상대와 잘 수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아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장애의 또다른 단서. 



첫 번째 날 :  


* 잔느는 우체국으로 추정되는 어떤 장소를 방문한다. 누군가에게 돈을 보내는 듯하지만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누군가에게 송금한다는 것은 다음에서 추론된다 : 잔느는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돈을 꺼내어 둘로 나누어 지갑에 넣는다. 한 가지는 장을 볼 때 썼지만 다른 한 가지는 다른 곳에서 썼을 것이다.


* 그날 갓난아기를 맡지만 접촉이 거의 없다.



두 번째 날 : 


* 남자가 지나치게 오래 머무르면서 감자가 너무 익어버리고 실수가 발생한다. 화장실 불 끄기, 침실 불 끄기, 창문 닫기를 잊어버린다. 심지어 돈을 보관하는 도자기 뚜껑을 열어둔다. 이러한 실수를 겪은 주인공은 새로 사온 감자를 깎으면서 기분이 나빠 보인다. 



세 번째 날 :


* 세 번째 날에는 실수가 더 많이 발생한다. 나이트가운의 단추를 하나 잠그지 않아 아들에게 지적받는다. 화장실 불 끄기도 잊어버리고, 구두 닦기가 짜증이 난 나머지 구두 솔을 던지듯 떨어뜨린다. 접시에 묻은 거품도 씻어내기를 깜박한다. 결국 아들도 무엇인가 빠뜨린 채 등교하고 만다.


* 그 다음부터 잔느는 초조해 보인다. 


* 첫 번째 날에 방문한 우체국(으로 추정되는 곳)에 갔지만 문을 닫았다. 어디론가 공중전화를 걸려고 시도하지만 전화가 고장났다. 세 명의 남자들이 비웃으며 지나간다. 집에 돌아과 우편함을 확인하지만 비어 있다.


* 그 다음 장면부터 누구나 무엇인가 틀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커피맛이 변했다. 우유와 설탕의 문제는 아니다. 잔느는 각설탕의 크기까지 비교하면서 신중하게 맛을 확인하지만 결국 커피를 버린다. 그렇지만 커피의 문제는 아니다. 새로 내려서 보관해두기 때문이다. 커피가 잘못됐다면 남은 커피를 모두 버렸을 것이다. 잔느의 입맛이 변한 것이다. 


* 커피맛을 확인한 잔느는 소파에 앉는다. 초조하다. 담배를 찾지만 없다. 장식 접시와 인형을 닦는다. 작업복을 입은 채 내려가 우편함을 두 번째로 확인한다. 비었다. 무언가 기다린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 주방 발코니에 나가 내려다본다. 역시 무엇인가 기다리는 것 같다.


* 갓난아기를 어르지만 아기는 울기만 한다. 아기를 돌려보내고 잔느는 아들의 코트 단추를 구하러 꽤 멀리 돌아다닌다. 미국에서만 파는 단추라는 이야기도 듣는다(남편이 살아 있다면 미국에서 안정된 삶을 살 수도 있었다). 카페에 가지만 주문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다시 단추를 사러 전차를 탄다.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 집에 오자마자 우편함부터 확인한다. 오늘만 세 번째로 확인이다. 우편함은 비었고 대신 큰 소포가 도착했다. 여성용 잠옷이다. 발송자는 알 수 없지만 재혼을 권유한 동생일 수 있다. 그리고 소포의 끈을 자른 가위는 그대로 화장대에 놓였다가 살인 도구가 된다.



결론 : 


* 3일간의 행적을 보면 잔느는 어디론가 돈을 보냈고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다. 세 번째 날에만 우편함을 세 번 확인했다. 입맛이 변해서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되었고, 아들이 입을 코트 단추를 고치려고 시도한다. 이 시도의 상징적 의미는 아들의 독립 준비이다. 누가 보아도 문제가 있는 아들을 독립시키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런데 왜 그 일을 시도하는 것인지 생각하면, 잔느는 지금 아들을 더 이상 부양하기 곤란한 처지에 진입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 그러한 처지가 발생한 이유는 잔느가 우편함을 계속 확인하며 무엇인가 기다리는 행위에서 추론할 수 있다 : 만약 잔느가 임신했고 임신중지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면 3일간의 행적과 변화, 초조함과 반복적인 강박이 설명된다. 커피맛이 변한 이유(임신 중 호르몬 변화)와 우편함의 확인(구매한 임신중지약의 도착), 공중전화 사용(약 발송을 확인하려는 연락), 발코니에서 (집배원의 도착을 기다리는 듯이)내려다보는 행위, 그리고 아들의 코트를 고치려는 (무용한)노력도 해명된다.


* 커피맛의 변화를 확인한 다음 잔느는 소파에 한동안 앉아 있다. 몸의 변화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웃이 맡긴 갓난아기를 달랜다. 아기를 낳아 키우는 일을 다시 감당할 수 있을지의 자기 확인이다. 아기는 계속 운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 임신중지약 대신 도착한 것은 여성용 잠옷이다. 흔히 네글리제라고 불리는 옷이며 실용적인 잠옷이 아니다. 동생이 보낸 듯한 재혼의 권유이다. 잔느는 이걸로 자신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는 사실을 직면한다. 재혼하지 않으면-남성의 부양 없이-아기를 낳을 수도 키울 수도 없다. 그렇지만 잔느는 장애 아들을 부양하며 성매매를 하는 자신이 결혼 시장에서 어떠한 처지인지 잘 알고 있다. 


* 살인 후 식탁에 앉은 잔느. 관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의외로 별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잠시 후 귀가할 아들에게 차려줄 식탁. 매일 하는 밤 외출. 뜨개질하는 스웨터. 사다 둔 감자는 먹기 전에 싹이 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약이 내일 도착할지도 모른다. 수선한 구두를 찾아 두어 다행이다. 코트 단추는 끝까지 달지 못했다. 


* 의도와 상관없이 살인으로 인해 잔느는 사적 감옥에서 공적 감옥으로 이동할 것이다. 감옥에서도 잔느는 매일 청소하고 조리하고 정리하고 일정한 시간에 잠들고 일어날 것이다. 변화 없는 일상이 이어질 것이다.


* 샹탈 에커만은 만 25살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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