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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un 26. 2023

손흥민 선수는 고향이 어디예요?

서산개척단과 '넝마주이' 축구단(1)

한국에서 고향의 기준은 의외로 복잡하다. 예전의 본적을 대체한 등록기준지라는 게 있지만, 그것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개 향우회는 지역 고등학교 졸업 여부로 가리는데,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면 초중고도 같은 곳에서 다녔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우회란 출향민들의 모임이라 현지에서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 학교는 둘째치고 지역에서 태어나야 고향 사람으로 보기도 하고, 아버지 대부터 살았어야 쳐주는 완고한 지역도 있다. 삼대를 걸쳐 살았지만 토지 소유 여부에 따라 은근히 밀어내기도 한다. 


여기서 애매해지는 것이 분명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에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경우다. 지역 학교를 나오지도 않았으니 향우회 기준으로는 고향 사람이라 보기 어렵다. 새로 정착한 지역 입장에서는 어쨌든 이주민이다. 한국처럼 십몇 대에 걸쳐 한 지역에 뿌리박아 살아온 역사가 기나긴 나라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자손들 고향도 덩달아 애매해진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봐야 할까.


2022년 11월 22일 서산타임즈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http://www.seosantimes.com/news/view.php?no=66456


손흥민 선수가 태어난 곳은 춘천이다. 서산의 손자라는 말은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이 서산 출신이기 때문이다. 손웅정 감독이 초등학교 졸업 후 축구부가 있는 춘천의 소양중학교에 진학했다. 서산 입장에서는 아까울 법 하다. 그 아까움이 더욱 진한 기사 하나 더.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83346


2014년 6월 19일 금강일보의 기사. '손흥민 선수는 서산의 아들'이라고 한다. 손자도 되고 아들도 되고... 그냥 사랑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자.


한편 춘천시는 지역 예산을 들여 손흥민 축구대회를 매년 개최중이다. 춘천 입장에서는 엄연히 손흥민이 춘천에서 태어났으니 우리 고향 사람이라고 주장할 만 하다. 그렇지만 손흥민 선수는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서울 강동의 동북고 중퇴가 최종학력이다. 향우회 기준으로는 사실 미달이다. 하지만 강원 춘천 향우회에서 손흥민 선수를 안 받아줄 리가 없다. 왜 그럴까. '우리 고향 사람'을 정하는 최종 기준은 결국 얼마나 성공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의외로 고향은 차갑다. 


그래서 고향 사람 기준이란 게 제법 유동적이다. 가문이 총결의하면 호적도 팠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고향에서 사람 하나 파내고 들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결국 인정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손웅정 감독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산을 떠났지만, 지금도 형제들이 살고 있고 서산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주민의 자식은 아버지 고향을 고향으로 치는 관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니 서산에서는 슬그머니 '손흥민 선수는 서산 사람'이라고 주장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어떻게 손흥민 선수가 서산 사람이냐고요. 춘천에서 태어났으니까 춘천 사람이지!)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지금 한국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와서 산다. 가령 파키스탄 사람이 와서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우리는 그 아이를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정작 그 아이는 한국의 문화와 관습이 몸에 배어 있고 한국어를 제1언어로 삼고 있다. 그럼 한국 사람이라고 불러야 맞지 않을까.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아이를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부를까. 무슬림이라서? 그럼 한국 무슬림들은 파키스탄 사람이 되는가. 우린 그 이유를 다 안다. 아버지가 파키스탄 이주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주민 자녀는 아버지 고향을 따른다. 그래서 손흥민 선수가 서산 사람이 되는 것과 파키스탄 이주민의 아이가 파키스탄 사람이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논리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도 계층이라는 막강한 결정요소에 모두 갈리고 만다. 성공하면 우리 고향 사람이고 실패해도 그럭저럭 여기 사람이지만, 사고 치면 이 지역 사람 아니다. 내쳐진다. 지역과 가문을 위해.


고향은 차갑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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