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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un 26. 2023

서산개척단 실태조사 시작

서산개척단과 '넝마주이' 축구단(4)

서산개척단은 2019년에야 비로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태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정부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전면적 실태조사이다. 피해자들이 70대 정도임을 감안하면 앞으로 증언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앞으로 조사가 이루어지면 더 많은 것들이 밝혀질 것이다.


이를 전제로 서산개척단을 들여다보면 좀 독특한 점이 있다.


첫째,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지 불과 6개월 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6개월이면 아직 쿠데타로 장악한 권력 기반이 불안정할텐데 박정희는 서산 간척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 사망한 날 박정희가 마지막으로 간 곳도 다름아닌 서산 삽교천이었다. 왜 그렇게 서산을 좋아한(?) 것인지.


둘째, 강제결혼을 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간척을 위한 노동착취만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결혼까지 시킬 이유가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기록사진을 보면 피해자들에게 웨딩드레스와 양복을 입혔고, 운동장에서 진행하기도 했지만 호텔이나 행사장을 빌리기도 했다. 강제노역과 강제결혼은 물론 강제정착까지 염두에 두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추진한 자들은 이게 옳은 일이라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이게 효과가 있을 것이고 우리는 저 불쌍한 아이들을 구제하는 동시에 국토를 넓히고 있는 것이라고.


실상은 속임수와 납치가 횡행했다. 정화자 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렇다.


"가세가 기울어 공장에서 일하던 중 정부 관계자가 돈을 두 배로 더 주는 공장으로 취업을 시켜주겠다며 데려갔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414502#home 


피해자들은 경찰이 '후리가리'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무관한 아이들이나 청소년, 청년들을 속여 끌고 온 것이다. 그 중에서 가정 밖에서 일하려는 여성을 속여 팔아넘기는 행태는 아주 오래된 악습이다. 다만 팔아넘기는 상대가 달라질 뿐이다. 팔아넘기는 상대는 남성에서 국가로 바뀌었다. 바뀐 시점은 일제 강점기이다. 일하고자 하는 여성을 팔아먹는 '브로커'는 같은 여성일 때도, 같은 동족일 때도 있다. 


한국에서 위안부 피해 증언은 많지만 가해 증언은 없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가해 증언은 있다. 피해 증언만 있었다면 지금처럼 인정받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가해 증언은 피해 증언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서산개척단도, 위안부도 국가가 범인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국가폭력이다'라고만 결론내면, 그 범인과 함께한 범죄자들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것이다. '국가에 떠밀려 억지로 했던 나도 피해자다' 라고.


이러한 국가폭력에 협조한 사람들도 가해 증언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해 증언을 통해 피해 사실 입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인 동기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물론 피해자가 용서하거나 단죄하는 여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사회적으로 참회할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여야 가해 증언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정화자 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생이별을 하게 됐다.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나를 속인 사람을 쏴죽이고 싶다."


정화자 씨의 약혼자는 군인이었는데, 수소문하여 서산개척단까지 찾아왔지만 가로막혀 만나지 못했다. 개척단에 끌려간 가족들을 찾으러 온 사람들도 같았다. 정화자 씨의 분노가 가리키는대로 국가만이 범인이 아니다. 그 범인에 협조한 가해자들도 같이 찾아야 한다. 그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국가의 거대한 폭력 속의 톱니바퀴가 되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작은 톱니바퀴들이 협조하지 못하면 국가라는 거대한 폭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그 과정을 알아내어 미리 끊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박정희가 정말 서산을 좋아했다는 증거 하나. 박정희는 서산을 인구 6백만 도시로 만들려고 했었다. 수도 이전을 목표로 했던 것이다. 


https://youtu.be/c4aXdm-upW8



왠지 박정희의 서산 사랑은 입지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 좀 있다.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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