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청년 시절 겪은 일이다.
지인이 지방선거 기초의원 출마를 결심했다. 그 지인은 평범한 가정주부 여성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정치에 관심이 생겨 입후보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족들이 영 관심이 없단다. 그뿐만 아니라 출마를 뜯어말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인은 하소연했다. 이렇게 출마하기가 힘들어서야 어떻게 정치를 하겠느냐고.
나는 위로해 주었지만 한편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족이란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인데, 가족 표도 끌어오지 못하는 사람이 유권자 표는 받을 수 있을까?'
특별히 사이가 나쁘거나, 가족이라도 해도 성품이 뒤틀리지 않은 이상 웬만하면 내 편이 되주는게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뜯어말린다면 아직 그 지인은 출마 준비가 되지 않은게 아닐까.
어쨌든 그 지인은 입후보를 못 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웬만하면 가족은 내 편이 되어 준다. 힘내라고 응원하고 성공하면 기뻐해주고 실패해도 네가 행복했다면 나도 좋은 거라고 웃어준다. (안 그러는 가족이라면 일단 논외로 하자.) 그런데 평소에 그런 가족이 "작가가 된다고? 글쎄... 생각 좀 해보자."라고 한다면 일단 노란불 신호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왜 그런 반응이 나올까. 가족이라고 좋은 말만 해주라는 법은 없다. 거리를 두고 이성적으로 관찰하는 것도 역할이다. 재능이 있다면 티가 난다. 노력을 하면 같이 사는 가족이 먼저 안다. 결과야 어쨌든 힘을 쏟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행복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행동과 노력이 옆에서 보는 가족에게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하지만 작가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하지 마."라고 할 수는 없다. 시작도 해보기 전에 발목을 잡으면 안 되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은 다음과 같다.
"음... 생각 좀 해보자."
노란불이다. 그렇다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우선이다.
책도 열심히 읽고, 운동도 하고,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내 시간을 확보해 달라는 합의(가사노동 분담 등등)도 요청하고, 틈나는대로 메모도 하고 시간을 내어 가족나들이 겸 취재도 다니는 것이다. 그 과정을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임한다면 옆에서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러면 당신은 작가의 꿈을 버릴 것인가.
이러한 경우도 있다. 평소에는 참으로 성품이 따뜻하고 주변도 잘 보살펴 주지만, 뭔가 하려고 하면 "그거 안 될거야. 하지 마."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 가족이라도 그런 사람과는 미래의 일을 상의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돈을 지상 최고의, 유일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과도 상의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돈을 좋아하는 것과 돈만 좋아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 사람과는 돈 이야기만 하는 걸 권한다(의외로 재미있다).
다른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꼭 가족에게 말을 해야 하나요?"
나는 말하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가족과 어느 정도는 할애해야만 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가족이 힘들다). 싫어도 같이 보내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 같이 살지 않더라도, 가족이 내 꿈을 싫어한다는 사실은 상당한 에너지 소모를 야기한다. 지지는 못 받을지언정 그렇게 나가는 에너지도 아껴야 한다. 글쓰기는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족의 지지를 확보하면 창작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가족이 문학을 좋아하고 소양이 있다면 집필 단계의 작품을 리뷰해줄 수도 있다. 아이디어를 두고 토론할 수도 있다. 가족이 나를 통해서 문학을 좋아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삶이 조금이라도 즐거워진다면 그것도 가족에 대한 기여다. 그렇지 않더라도 가족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지지는 상당한 토대가 된다.
"미안하지만 하루에 두 시간만 내 시간을 갖게 해 줘."
"그럴게. 설거지 정도는 내가 해 줄게."
"고마워."(감동... 내가 책 계약하면 식기세척기부터 살 거야 꼭.)
그뿐만 아니라 배우자가 검색해준 공모전 정보로 출판이 성사될 수도 있다. 그때의 공은 꼭 나눠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수상 이후 배우자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맞벌이하는 아내가 집필 기간 동안 가사노동까지 떠맡아 주었기에 가능한 성취였다는 것이다. 수많은 대문호들이 작품을 남겼지만 집필하는 동안 온갖 집안일과 교정교열, 비서업무, 육아 등등등을 떠맡아준 아내에 대해 감사를 표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배은망덕한 것들이다.
물론 작가가 된다고 해서 가족의 재생산 노동을 공짜로 가져갈 권리는 없다. 그 부분도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가족이 주는 유무형의 지지는 더없이 소중할 것이다.
작가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래도 우리, 그동안 같이 재미있었어."
라는 말을 나눌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