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이다. 이제 가을이 올 것이고, 그 계절이 깊어지면 신춘문예 공고가 난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작가 지망생들은 조바심이 난다. 어디로 작품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문예지 등단도 좋지만 아무래도 서울에서 발행되는 중앙 일간지들이 주최하는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싶다. 새해 첫 날, 상패와 함께 활짝 웃는 얼굴 사진을 신문에 싣는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오른다. 작가의 꿈을 은근히 비웃던 주변 사람들의 당황한 표정도 떠오른다. 꿈만 같다. 그래서 예로부터 한국에 3대 불치병이 있다고 하나 보다. 정치병, 고시병, 신춘문예병. 이 병을 동시에 두 가지, 세 가지를 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꼭 당선으로 치유하시길!)
알려져 있다시피 서구에는 신춘문예도 등단 제도도 없다. 책을 내면 작가Writer가 된다.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다. 출판사가 미출간 원고를 선정하여 상을 주는 한국과 일본에 비해 서구는 이미 출판된 책들을 대상으로 주는 경우가 많다. 번역된 도서에도 상을 많이 주지만, 한국에는 번역 도서를 대상으로 한 상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쨌든 신춘문예는 작가가 되기에 가장 멋진 방식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 신춘문예 외에도 이름있는 문예지들을 통해 등단할 수도 있지만, 소위 '이름있는' 문예지는 신춘문예 못지 않게 작품을 싣기 어렵다.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나는 학생들에게 문예지 등단도 권장하는 편이다. 작가로 활동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데뷔 방식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문예지로 등단길을 찾을 때에는 되도록 출판사가 운영하는 매체를 권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등단 이후다. 등단 이후 청탁이 오지 않으면 난감한 지경에 빠진다. 등단을 했기에 소설가, 시인, 동화작가 등의 타이틀은 생겼으나 그걸로 끝이다. 청탁이 잘 오지 않는 이유는 매체 자체의 숫자도 줄어들었거니와 기존 작가들이 활동하는 공간도 턱없이 좁아진 탓이다. 데뷔하려는 신인 숫자는 점점 늘어나지만, 출판 시장도 매년 조금씩 오그라들고 있다. 베스트셀러는 꾸준히 나오지만 전체 발행 종수는 줄어든다. 원래 책 시장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롱테일이라는데, 그 꼬리가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문학도 출판도 신인 작가군을 눈여겨본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나와야 상황이 타개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책이 점점 덜 팔리기에 막 등단한 신인 작가도, 출판사도 답답한 상황이다.
독자와 직접 연결되려면 책이 필요하고, 그러면 출판사의 손을 거쳐 종이책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등단 직후의 대부분의 작가들에게는 연락이 잘 오지 않는다. 냉정하게 말해서 등단만으로는 변하는 것이 거의 없고, 출판으로 이어지는 원고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등단은 과정이고 출판이 작가로서의 진정한 여정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책을 내고 출판사와 함께 홍보를 하고, 독자의 목소리를 접한 뒤 다시 새로운 원고를 쓰는 과정을 통으로 경험해야 한다. 출판 시장과 독자의 욕구, 작가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길, 이 세 가지를 종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어떤 드라마 작가 이야기다. 방송사 공모전에 당선되고 나서 드라마 제작부 간부들이 당시 신인이었던 이 작가에게 지나가는 말투로 '원고 있으면 가져와봐라'고 말했다고 한다. '원고가 좀 많은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거 다 가져와봐'고 대꾸했다. 다음날 그 작가가 가져온 것은 사과 상자에 가득 찬 원고 뭉치였다. 그 원고 뭉치 속에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인기 드라마도 있었다. 사과 상자로 방송사 간부들을 놀라게 했던 이 작가도 원래 데뷔한 이후 몇년 넘게 공부를 따로 했다고 한다.
등단만 바라보고 준비한다면, 막상 등단 후에 단편 작품 한 편만 남고 출판 준비를 위해 장편 준비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등단 이후 출판을 통해 활동할 준비를 한다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듯한 당혹감을 피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러니 작가 지망을 위해 공부하는 기간 동안 어떤 책을 준비해서 낼 것인지 작품 메모를 포함하여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