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사진용 카메라를 사야 하나
한밤중의 풍경은 대낮과 많이 다릅니다. 가끔 나가보면 보이지 않던 얼굴이 보입니다.
낮에는 잘 안 보이던 간판도 보이고요. 안과와 정형외과 등의 병원 건물에 룸싸롱(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그냥 술집)이 영업하고 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업종이 한 건물에 있습니다. 도시계획 없이 형성된 구도심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죠.
재작년엔가 봉천동에 갈 일이 있었는데 요양원과 나이트클럽이 같은 건물에 있어서 기가 차더군요. 더욱 재미있던 것은 두 업장 이름이 모두 '수'였습니다. 수 요양원, 수 나이트클럽... 1990년대에 좀 놀았던 사람들이라면 이 이름이 뭔지 아시겠죠. 참고로 강남 리버사이트 물 나이트클럽은 2014년에 문을 닫고 스테이크 하우스로 바뀌었다네요.
예쁜 호프집이죠. 오갈 때마다 가끔 찍어보는데, 아직 밤 사진을 잘 찍기엔 아이폰 13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곳, 아파트 앞입니다. 분위기가 살짝 다릅니다. 신도시의 여러 특징 중 하나는 분리주의입니다. 도시계획을 세워서 업종별로 건물과 거리 자체를 분리합니다. 그래서 구도심처럼 어르신들이 다니는 병원과 룸싸롱이 같은 건물에 들어가는 사태(?)를 방지하는 것이지요. 최근 집창촌 철거가 이루어지는 것도 결국 신도시의 요구와 맞물려 있습니다.
참고로 위의 두 사진은 한밤중처럼 보이지만 저녁 8시 30분에 불과합니다. 경안동은 저녁 나절에는 인적이 적어지다가 한 잔 마신 사람들이 3차를 갈까말까 고민하는 시간, 즉 자정에서 새벽 1시에 오히려 붐비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법 젊은이들이 많더군요.
아파트 앞에서 재활용품을 모으는 노인이 캔을 밟아 찌그러뜨리는 모습입니다. 오른쪽에 하얀 수저처럼 보이는 건 아파트 조형물입니다. 여기는 아파트 앞 널찍하게 마련된 공원 비슷한 공간입니다. 다니면서 관찰하다 보면 그 공간이 구도심과 신도시의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신도시 즉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한 구도심 주민들이 이 공원의 벤치에 앉아 땀도 식히고 이야기도 나누는 거죠.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도 이 공간에서 구도심 주민들과 교류할 기회가 생깁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도 그런 공간이 있지요.
새벽 1시 반경의 시장 모습. 들어가서 걸어 보려다가 관뒀어요. 남편이 으슥한 곳 혼자 다닌다고 걱정할테니까요. 젊어서 기운이 남아 돌 땐 몰랐는데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왜 걱정들을 하는지 이해가 갑니다.
근처 도서관 옆 벽이 컬러 블록을 장식되었네요. 그냥 예뻐서 찍었는데 우연찮게 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앉아서 쉬고 있는 남성 노인과 '천천히'라는 신호. 제발,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아. 난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 변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부디 천천히 가 다오...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럴까요. 왠지 외로움이 묻어나는 빌라입니다. 대칭이 되도록 신경써서 지었습니다. 에어컨 실외기는 딱 한 대 달렸네요. 이 뜨거운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지요.
아이폰 13의 부족한 밤 사진 역량이 드러나지만, 그래도 구도가 마음에 들어서 안 지우고 살려 둡니다. 아파트, 빌라, 상가 건물, 그리고 아직 개발되지 않아 주차장 노릇을 하는 나대지가 한꺼번에 담겼습니다. 이 나대지는 원래 빌라가 올라가는 주택용지인데, 전세사기 등으로 해당 시장이 거의 박살나는 바람에 그대로입니다. 아직 자연의 손에 있는 거죠. 자그마한 숲처럼 풀이 자라고 있어서 다닐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녹지가 꼭 있어야 하는 거죠. 향후 어디서 살지 기준을 정한다면 그 중 하나로 높은 녹지 비율을 꼽을 겁니다. 기후재난의 시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