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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an 02. 2025

점사는 나쁜 놈들이 본다

리숴의 <상나라 정벌>

점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다. 그중 동아시아에서 점사는 지배층과 관련이 깊다.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왕은 사제거나 무당이었다. 사제의 주된 일은 점사였고, 점괘에 따라 제물을 골라 바쳤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중국의 왕조는 상나라다. 상대 지배층은 후일 갑골문이라고 불리는 점을 치고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 제물로 바쳐진 인간은 먹혔다. 갑골문은 이후 점사의 원형이 되고, 인간 제물은 제사의 원형이 되었다. 


상나라 지배층은 점사에 골몰했다. 일상적으로 점을 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점을 쳤다. 질문은 나라의 중대사에서부터 사냥 같은 비교적 작은 일에까지 이르렀다. 전쟁에 이길 수 있는가? 왕후가 아들을 낳을 것인가? 병자가 있는데 죽을 것인가? 사냥에서 무엇을 잡을 것인가? 왕자가 활쏘기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는가? 왜 이들은 이렇게 점사에 골몰했을까. 


이러한 점사는 동아시아에서 지금도 점사에 널리 쓰이는 사주와는 무관하다. 사주는 천간과 간지를 쓰며, 여덟 개의 간지가 상생상극을 이루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상대에도 천간과 간지가 있었다. 지금도 간지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는 불명확하다. 상대는 천간을 일력처럼 사용하며 사람 이름에 붙였다. 가령 병(丙)일에 태어나면 그 글자를 이름에 넣는다.


상나라 지배층은 중원 출신이 아니다. 이들은 산둥에서 왔다고 알려졌다. 중국 동부의 산둥에서 서진한 것이다. 산둥은 한반도에서 가까우며 백제의 영토였을만치 교류가 깊어왔다. 조선족이 대한민국에 대거 정착하기 전의 중국 교포들은 화교라고 불리우며 대개 산둥 출신이었다. 그렇기에 중원에서 볼 때 산둥에서 왔다고 하면, 한반도에서 왔을 수도 있었다. 한반도 사람은 동이족이라 불리웠다. 어쩌면 중원에서 산둥 사람과 동이족을 별로 구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공자는 상나라 귀족의 후예였다. 그렇기에 '공자는 동이족'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공자가 한반도 사람을 선조로 두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상대 왕족이나 귀족 중 한반도인이 끼어 있었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다.


리숴는 <상나라 정벌>에서 상나라 지도층이 일상적으로 점을 치고 사람을 죽이고 먹으며 생매장했는지 냉정하게 기술한다. 무릎이 잘려 구멍 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이 그대로 발굴된 모습을 서술한다. 열네 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녀의 머리가 찜기에서 나온 사실도 그대로 적는다. 사실 이 발굴들은 최근의 것이 아니며 1950년대에서 1980년대에 걸쳐 나온 것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상대 지배층은 윤리와 도덕이 미처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상고시대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할 만치 잔학한 짓을 일상적으로 저질렀다. 매일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어대고 연회를 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상대 지배층의 사치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서른 명의 귀족이 이백 명의 노예가 짊어지는 가마를 타고 다녔다. 거대한 궁전을 짓고 방의 기둥을 붉은 물감으로 칠했다. 벽에 비단을 드리우고 끝자락에 옥을 매달아 바람이 불 때마다 찰랑대는 소리가 나게 했다고 한다. 무려 11세기 전의 이야기다. 인구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 이러한 탐식과 사치는 곧 다른 부족의 피착취와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한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일상적으로 점을 쳤다는 것은 그들의 심리 상태를 잘 말해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덕과 상궤를 오래 전에 벗어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 손에 죽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원한이 하늘에 다다랐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늘 자신들의 편을 찾았다. 가장 가까운 편은 그들의 조상, 살육과 식인의 습관을 물려준 사람들이었다. 점사를 통해 조상들이 자신들의 편인지 늘 물었고, 긍정적인 답이 나와야만 안심했다. 그리고 다시 악행에 골몰하였다. 신이 된 자신의 조상들이 보살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저지르는 악행이 정당하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자신이 앞으로도 악행을 저질러도 무방하다는 안정을 취하기 위해 점사를 벌였다. 


상대 지배층의 점사는 결코 미래를 내다보는 신묘한 방술이 아니었다. 점사라는 것의 기원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점사란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쁜 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악행을 저지를 수 있게 해 주는 심리적 방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사가 갖고 있는 사악한 측면-인간의 악한 심리를 덮어주고 망각시켜주는 관성에 빠지게 된다. 점사는 근본적으로 자기 합리화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인 것이다. 그렇기에 점사를 반복적으로, 지나치게 여러 번 보러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멀리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 그렇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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