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잘 쓰고 보세요
오늘 우연히 스레드에서 안타까운 글을 읽었다. 에세이를 출판했는데 예약판매 200부를 못 채우면 나머지 부수를 30% 가격으로 작가가 매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판은 600부. 이건 사실상 자비출판 조건인데 출판업계 사정을 잘 몰랐던 모양이다.
예술인 활동증명에서 자비출판은 예술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물론 나도 자비출판을 한 적이 있다. 박사논문을 학술 서적으로 냈는데 당연히 에세이보다 못 팔리는 분야다. 15년 전이기는 하지만, 에세이를 낸 그분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평소에 작가 활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자비 출판을 피하라고 가르친다.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돈만 쓴다. 물론 기념으로 내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빠른 길이기에 자비 출판이 다 안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계약 조건이 사실상 자비 출판인 경우도 살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라면 독립 출판이 낫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출판사에서 받은 거절 메일이 너무 많아요 ㅜㅜ' 출판사에서 거절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원고 퀄리티가 첫 번째겠지만, 눈물을 머금고 좋은 원고를 돌려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단 출판사와 지향점이 맞아야 하고, 좋은 원고라고 전부 다 출판한다면 회사가 먹고살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상업성과 예술성, 시의적절함이 맞아야 하는 건 물론이다. 개인적으로 지금 에세이 출판 시장은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본다. 출판사와 독자는 에세이 작가 지망생들만큼 현재 나오는 에세이 수준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일본에서 독자적인 시장을 이룬 르포르타주 / 논픽션 / 에스노그라피 도서와 한국의 에세이 도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원고 수준이야 어쨌든 자비출판 / 유사 자비출판 계약을 하는 건 쉽다. 뒤집어서 그런 계약만 온다는 것은 원고 수준을 스스로 의심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본 작가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지만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자기 자신에게 비정하다. 언제나 출판 시장은 어렵다. 그 어려운 시장을 뚫으려면 작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잘 쓰고,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작가보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내가 편하게 방 안에 앉아 쓴 글을 팔아주는 사람. 하하, 언제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