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다면야 뭔들...
작법서가 요즘처럼 많이 나오는 때를 못 봤다. 유명 작가라면 작법서를 한두 권쯤 내기도 하지만 누구나 내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가도 작법서를 내고, 장르 전문가가 장르를 중심으로 한 작법서를 출판하기도 한다.
작법서는 기술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나는 딱 두 권을 읽었는데 박덕규의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 쓰기>, 박상우의 <소설가>다. 엄밀히 말해 작법서는 아니지만 이태준의 <문장 강화>와 김정선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도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작법서보다 작가 인터뷰를 선호하는 편인데 파리 리뷰의 <작가라면>이 재미있었다. 거기서 퇴고를 하느니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렵지만 일리가 있는 얘기다.
작법서가 너무 많기 때문에, 고르기도 어렵고, 괜찮다는 책도 막상 읽어보면 시원찮을 수도 있다. 사실 당연한 게 작가 지망생마다 도달해 있는 수준이나 개성이 각각 다르기에 그걸 모두 맞춰주는 책은 드물기 때문이다. 순문학을 지향하는 사람이 스티븐 킹의 작법서에서 결정적인 걸 얻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오르한 파묵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독자가 이슬람의 역사나 세계관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으면 안 맞을 수도 있는 거다. 천 명의 작가가 있다면 최소 천 가지의 창작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최소'라고 쓰는 이유는 작가 한 사람이 여러 가지 기법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작법서를 읽겠다고 결심하면, 그게 도움이 되는 상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어떻게? 기술적인 면에서. 내가 쓰고 싶은 주제와 중심 소재가 확실한데 문장력이 시원찮거나, 특정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스토리텔링이 잘 안 되거나 하는 문제 등이 있다. 이럴 때에는 작법서가 제시하는 기술적인 해법이 도움이 된다. 작법서가 많이 나와서 좋은 점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세부적으로 풀어주는 책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요... 제가 어디가 부족한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엉엉...'
'괜찮아요. 부족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잖아요.'
'다... 부족...한 거 같아요(오열)'
병원에 가면 의사가 제일 먼저 해주는 일이 진단인 것처럼, 작가 지망생은 자기 상태를 셀프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건 작가들이 매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독서와 취재를 통해 배경 지식을 쌓는 것은 물론 자신이 매달린 주제를 다룰 수 있을 만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추는 것을 넘어 심지어, 스스로 이 문제에 매달릴 수 있을 만치 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갖고 있느냐까지, 작가는 매일 의사처럼 자기 자신을 셀프 진단한다(아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서 쓰다가 패대기라도 칠 거 같으니까 쉬자). 그리고 거기에 처방을 내린다. 그게 누구는 마라톤이고, 누구는 커피와 케이크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칭얼대는 것일 뿐이다(물론 맨 나중 처방은 제일 형편없다).
이 진단이 부재하면 사실 자신에게 맞는 작법서를 고르기가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작법서는 주제나 중심 소재에 대해 잘 말해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무엇이 좋은 주제인지 말해주는 작법서는 드물다(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 부탁). 왜냐하면 주제란 작가 본인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하기에, 그 사람의 그릇 자체이고, 좋고 나쁨을 떠나 그 작가의 역량이나 개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즉 주제가 그 작가 자신인 것이다. 그러니 작법서에서 제시해주기 어려운 것이다.
특정 주제가 좋고 안 좋고를 논하는 것은 작가의 인격에 관계되는 일이기에 합평에서도 뭐라고 말해주기가 조심스럽다. 아직 작품화되지도 않은 주제를 가지고 외부에서 뭐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누가 알겠는가,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어떤 주제든 쓰려는 사람이 신념을 갖고 자원을 투자해서 작품화하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인이 쓰고 싶다는데 어떡하겠는가. 눈에 씌워진 콩깍지(?)가 벗겨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수밖에. 그게 벗겨지면, 스스로 좋은 주제를 찾아서, 기술적인 문제점을 파악한 다음 적합한 작법서를 찾아 읽고 공부를 하게 된다. 마치 시원찮은 연애가 끝나면 시간낭비만 했다고 후회하는 가운데서도 사람 보는 눈도 관계를 운영하는 능력도 한 뼘은 성장해 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좋은 주제를 고르는 법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원찮은 주제를 알아보고 버리는 법이 있다. 특히 작가 지망생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