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작가라는 신분

by 주애령

예전에 있던 농담. (젠지들은 모를) 이 나라에는 3대 고시병이 있다고 했다. 사법고시, 정치고시, 신춘문예. 잘 살든 못 살든 이 세 가지 '별의 순간'을 잡기 위해 평생을 소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법고시(사법시험이라는 말이 맞다. 참고로 나는 로스쿨 찬성론자다)를 준비하며 신림동에서 청춘은 물론 중년까지 내버리는 사람들(대부분 남자).


4년마다 공천을 받기 위해 정당과 지역 정가에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 활동을 잘 안 하는 경향이 있다. 공천 시즌이 되면 갑자기 나타나서 '경선에 붙여달라'고 요구한다(찾아보니 지난달에 복당하셨네).


위 두 가지에 비하면 신춘문예는 그나마 순한 맛이다. 역시 평소에는 잘 안 쓰다가 가을이 되면 이제 쓰겠다고 원고지를 붙들고 끙끙댄다. 글을 잘 안 쓰는 건 그렇다 치는데 선배님은 평소에도 책 잘 안 읽으시잖아요...?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대해서는 이 글에서 길게 쓸 생각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특유의 중앙 지향적인 역사와 문화 때문이라고 본다. 실용보다 관념, 이념과 추상, 철학을 가치있게 쳐 주는 경향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어쨌든 예전부터 한국에 작가가 많다는 말은 많았다. 시인만 10만 명이라는 얘기도 돌았고, 챗지피티에 물어보니 한국문인협회 회원은 1만 5천명 남짓이라고 대답해준다(틀릴 수도 있어요). 한국작가회의는 회원수를 공개하지 않는다(나는 둘 다 회원 아님). 예술인활동증명 기준으로 현재 한국의 문인 숫자는 2만 1천 명 남짓이다. 나는 이게 아주 적은 숫자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다른 글에서.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한 작가들 중 하나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는 이러한 말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는, 네이버 인물정보에 검색하면 내 이름과 책이 나오는 걸 보고 싶다.'


뭐랄까, '글을 쓰고 싶어요'라는 표현 대신 '작가가 되고 싶어요'라는 표현을 쓰는 데에는 짐작되는 이유가 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작가란 '누구나' 될 수 없다. 그런데 글이란 원래 '누구나 쓰는' 거 아닌가...?


물어보고 싶다. 글을 쓰고 싶은 건가요, 작가가 되고 싶은 건가요? 글을 쓰는 기쁨보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내 이름이 나오는 즐거움이 먼저 떠오르나요? 글머리에 언급한 정치낭인, 고시낭인에게도 비슷한 질문이 가능하다. 당신은 정치와 법률을 통해서 약자를 돕고 강자를 억누르며 공동체에 봉사함으로써 명예를 얻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권력과 부와 명성을 얻어 한 평생 잘 살고 싶은 건가요? 만약 후자라면 '고시패스' '금배지'라는 말 속에 숨은 귀족-신분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책이 쏟아져나오고 노벨문학상까지 탄 이 나라에서 조용히 나오는 투덜거림, 작가가 이렇게 많아, 라는 푸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질문을 멈추기가 힘들다. 당신, 글을 쓰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작가라는 '신분'이 갖고 싶은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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