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현대의 동화, 무협소설(4)

by 주애령

<사조영웅전>의 세계관은 두 가지 사건 위에 서 있다. 하나는 실제 역사적 사건인 1126년 정강의 변(靖康之變)이고, 다른 하나는 가상의 사건인 화산논검이다. 정강의 변이란 다름 아닌 송 황제 휘종과 흠종이 이민족 왕조 금에게 납치된 사건이다. 역사에서 황제가 두 명이나 잡혀간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들 두 황제는 죽을 때까지 금에게 빼앗긴 자기 나라 땅에서 지내야 했다. 금 황제는 휘종과 흠종을 제후로 강등하고 칭호에 어두울 혼(昏)자를 넣어 톡톡히 망신을 주었다. 이후 남송의 새 황제가 된 고종은 협상을 통해 자신의 생모와 휘종의 유해를 돌려받았지만, 형인 흠종을 다시 데려오지는 않았다. 한 나라에 황제가 둘이나 생기는 혼란을 경계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상의 사건인 화산논검은 <사조영웅전>보다 2, 30년 앞선 시점에서 일어난다. 무공비급 <구음진경> 때문에 강호에 혈투가 심해지자 전진교 장문인 왕중양은 무공 대회를 제안한다. 대회의 우승자가 <구음진경>을 영구 보관하여 무의미한 싸움을 막자는 것이다. 정강의 변과 화산논검은 <사조영웅전>이 전개되는 토대로, 이후 <신조협려>와 <의천도룡기>까지 김용이 두고두고 써먹는 설정이 된다.


역사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패자의 입장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과거가 현재의 관점에 맞추어 재해석되면서 승자가 아닌 사람들의 입장도 조명받는다는 의미다. 의외로 역사책은 수시로 바뀐다. 새로 발굴되는 유물, 봉인이 해제된 비밀문서, 뒤늦은 증언, 새로운 해석과 연구 등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역사책은 다시 쓰인다.


<사조영웅전>에서 추앙받는 악비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현재 중국 역사학계는 악비 영웅화가 다소 부풀려졌다고 본다. 기록에 불분명한 점이 있고 전공(戰功)도 다소 과장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악비는 상당히 평가절하 당했다. 지금의 중국은 금을 세웠던 만주족을 포함하여 55개 소수민족을 ‘하나의 국민’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주족과 싸웠던 악비를 영웅으로 떠받들면 사회통합의 걸림돌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만주족이 만주에 독립된 국가를 꾸리겠다고 어떻게 될까? 다시 악비가 신화적인 영웅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배층이 기록하는 역사는 이른바 정사(正思)로 불린다. 그렇지만 역사는 정사가 전부가 아니며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기억으로 짜여진 퀼트 천과 같다. 지혜로운 기층 민중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삶 속에 진실의 조각들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식이 모자란 기층 민중들이 직접 어려운 말로 책을 쓰기도 어렵거니와 그들의 발언은 사회적으로 잘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의 역사 해석은 소문이나 전설, 이야기로 전해지다가 야사(野史)가 되었다. 또한 그중 일부는 무협소설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발전되었다.


서구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식자층이라면 ‘정사는 진실, 야사는 거짓’로 구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동아시아적 사고방식에서는 세상 만사가 진실과 거짓으로 나뉘지 않는다. 역사가 둘로 나뉜다면 그것은 음과 양이 나뉘는 원리를 모방했기 때문이다. 음양은 본질적으로 상호 보완적이다. 여성과 남성이 같이 살며 보살피듯이, 정사와 야사는 역사라는 장구한 흐름에서 서로 빠뜨린 부분을 보충하며 진실은 허구를 통해, 허구는 진실을 통해 비로소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하게 된다.


<사조영웅전>의 세계관을 이루는 정강의 변이라는 실제 사건과 화산논검이라는 허구의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 사건은 서로 뒤바뀌고 보완하며 충돌하는 음과 양처럼 곽정과 황용의 운명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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