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문학 속으로(1)

무협소설의 거장 김용 문학을 이야기하다

by 주애령

김용(金庸)의 본명은 사량용(査良鏞)이며, 1924년 3월 10일 절강성 해녕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관직에 나아간 집안 자손이었고 조부는 강소성 단양현 지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청나라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멸망했고, 그가 태어나던 해에는 옛 황실마저 해체되었다. 망국의 관리 집안에 태어난 김용과 그의 형제들은 가업과 비슷한 분야를 찾아야 했다. 김용에게 그것은 언론이었다. 전근대 유교 국가에서 문필은 관료의 필수적인 교양이다. 비록 김용은 신문의 판매를 위해 무협소설을 썼으나 가업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상하이 동오대학 법학과에 다니면서 언론사 <대공보大公報>에서 번역을 하던 김용은 1948년 홍콩으로 옮겨갔다. 홍콩 이주는 김용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제국의 침입과 군벌들의 싸움,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란으로 황폐했던 중국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홍콩으로 몸을 피했다. 동시대 살았던 작가 장애령(張愛玲)도 상하이에 머물다가 홍콩 대학에 입학하기도 했다. 이후 김용이 여든이 넘어 케임브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도 학업을 미처 마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신만보新晩報, New Evening Post>에 입사한 김용은 만 서른한 살이었던 1955년, 첫 번째 무협소설 <서검은구록書劍恩俱錄>을 연재했다. 1959년에는 드디어 세상을 뒤흔든 <사조영웅전射鵰英雄傳>을 발표하여 명성을 얻었다. 같은 해 김용은 자신의 신문인 <명보明報, Ming Pao>를 창간하면서 <사조영웅전>의 속편 격인 <신조협려神鵰俠侶>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1994년 자신의 지분을 정리할 때까지 김용은 <명보>에 무협소설과 정치사설을 썼고, <명보>는 지금도 홍콩의 주요 언론으로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


김용이 무협소설을 쓴 동기는 일단 <명보>의 판매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1970년 46세에 마지막 작품 <월녀검越女劍> 발표 이후로 김용은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고쳤다. 달라진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거나 독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등장인물의 비중이나 성격, 작품 결말을 수정하기도 했다(예를 들어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의 복잡한 삼각관계가 명확하게 정리되었다). 김용이 창작욕보다는 독자를 위해 작품을 썼다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