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의 거장 김용을 이야기하다
김용의 대표적인 업적 두 가지를 거론하자면 첫째로 대중의 값싼 오락으로 치부되던 무협소설을 격조 있는 문학의 경지에 올렸다는 것이다. 김용의 작품에 나오는 정파/사파의 대립, 로맨스와 기이한 인연 등은 지금도 무협소설의 컨벤션으로 사용된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는 무협소설을 무협문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비록 김용은 위대한 작가지만 김학(金學)이라는 분야는 현대 무협소설과 큰 연관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성 있는 문학이 된 것은 김용 문학이지 현대 무협소설은 아니다.
두 번째 업적이라면 김용 작품에 중국 전통과 역사, 문화 예술이 풍부하게 인용되었다는 것이다. 읽다 보면 먼지 쌓인 고문헌 속에 파묻힌 역사의 한 조각이 김용 작품에 빛나는 보석으로 박혀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박학다식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든 원동력이다. 그러나 단순히 박학다식을 나열한다고 좋은 글이 되지는 않는다. 무협소설이라는 형식을 걷어내고 나면 김용 문학의 전체 모습은 중국 전통문화의 거대한 모자이크가 된다. 김용의 목적에 따라 그려진 밑그림에 따라 중국의 정신적 전통은 아주 작은 조각들이 되어 재배치되어 있다. 그 밑그림은 아마도 극도로 혼란했던 근현대 중국과 홍콩의 사회상일 것이다.
김용은 자신의 작품을 영상화하는 데 매우 협조적이었다. 원작과 다른 각색에 개방적이었고 때로 저작권료를 거의 받지 않기도 했다. 말년에도 드라마 제작팀에게 친히 메시지를 보내 격려했다. 화교 시청자가 확보된 지역에서 김용 원작 영상물은 지금도 기본 수익을 깔고 가는 콘텐츠다. 저작권 개념이 미약했던 시절에는 이름을 도용한 위작도 많았지만 오히려 김용의 세계관 확장에 기여한 측면이 적지 않다. 그중 유명한 축에 드는 위작 <구음진경九陰眞經>은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와 드라마, 위작과 팬픽, 인터넷 토론 등을 통해 김용의 세계는 화교 네트워크를 타고 동아시아로 확장되었다. 누가 제일 무공이 고강하냐는 수다에서부터 의리에 대한 토론은 물론, 작품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실 김용 문학 못지않게 흡인력 있는 플롯을 가진 스토리는 많다. 그럼에도 김용이 각별히 사랑받은 이유가 있다. 근대를 거친 아시아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