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와 <나무 위의 남작>에 나타난 폭력에 대하여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원죄를 짓게 되었다고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지만, 어쩌면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원죄의 시작일 지도 모른다.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위치한 인간에게는 더더욱. 내가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쳐야 한다는 건, 자연의 섭리지만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잔인한 숙명이다. 내가 다른 생명을 직접적으로 해치치 않아도 나 대신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주문을 하기도 한다. 또는, 직접 주문을 하지 않아도 '돈'이라는 매개를 통해 그 일이 진행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도,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에서도, 음식을 만들고 먹이는 행위는 폭력을 대표한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가 악몽을 꾸고 고기를 먹지 않자 가족들은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을 붙잡고 아버지가 고기 한 점을 억지로 입에 쑤셔 넣는가 하면, <나무 위의 남작>에서 코지모 누나가 매번 짐승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요리로 만들자 이를 불쌍히 여긴 코지모와 그의 동생이 밤에 몰래 달팽이들을 탈출시켰으나 실패하였고, 코지모 누나는 다음날 바로 그 달팽이로 요리를 만들어 억지로 먹게 한다.
누군가를 억지로 무언갈 하게 만드는 것은 본디 폭력성을 띠지만, 왜 유난히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행위는 더 폭력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어찌하여 목숨을 유지하게 하는 음식이 폭력을 대변하게 되었을까.
"처형이 장인을 잡은 팔힘보다 처남이 아내를 잡은 팔힘이 셌으므로, 장인은 처형을 뿌리치고 탕수육을 아내의 입에 갖다댔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내는 신음소리를 냈다.
...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아내의 입술에 장인은 탕수육을 짓이겼다. 억센 손가락으로 두 입술을 열었으나, 악물린 이빨을 어쩌지 못했다. 마침내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장인이 한번 더 아내의 뺨을 때렸다." (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p.50)
"그러고 나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6월 15일 정오 정각에 모여 식구들끼리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런데 부엌을 장악한 우리 누나가 무슨 요리를 준비했는지 아는가? 다름 아닌 달팽이 수프와 달팽이 요리였다. 코지모 형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먹어라, 안 먹으면 당장 너희들을 골방에 다시 가두어버릴 테다!" 나는 순순히 그 말을 따랐고 그 연체동물을 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이탈로 칼비노 <나무 위의 남작> 민음사 p.21)"
음식을 만드는 것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억지로 먹이는 행위가 특히나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생명을 희생시키게 만들기 때문일까. 억지로 먹일 때뿐 아니라, 길거리에 넘쳐나는 음식들을 보면, 배불리 먹고도 식탁 한가득 남아있는 음식들을 보면, 그 모습이 폭력적이게 느껴진다. 이 음식을 차리기까지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으나, 우리는 이를 그대로 버리고 있기 때문인가.
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모습을 눈 감아 상상해본다.
쌍끌이 어망으로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바다에 사는 모든 것들을 쓸어 담는 배들.
벌집 같은 닭장에 갇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해 배설물에 발이 녹아버린 닭들.
인위적인 잦은 출산으로 지쳐 쓰러져 옆으로 누운 돼지와 어미의 젖을 정신없이 빠는 새끼돼지들.
무엇보다 가장 폭력적인 건, 이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차피 모두 먹지도 못할 거면서 낮은 가격으로 대량 판매하게끔 만드는 우리 자신들이다.
공감능력을 상실하고 눈 앞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이 모든 과정을 잊어버린 탐욕스러운 사람들.
비단 음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잊어버리지 않고, 탐욕이 타인에 대한 공감을 잠식하여 폭력이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 있을까?
이러한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채식주의자>의 영혜와 <나무 위의 남작>의 코지모는 나무를 택한다. 영혜는 나무가 되기를 꿈꾸고, 코지모는 나무 위로 올라가 죽을 때까지 그 위에서 산다. 나무 위에서 자연과 문명의 조화를 이루며 사는 코지모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이지만, 현실은 나무가 되려는 영혜를 정신병원에 가두어버린다.
우리는 코지모가 택했던 그 이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커버 이미지: 도메니코 뇰리 <나무 위의 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