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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yon Jul 19. 2016

복원과 기억 2

김숨 작가의 'L의 운동화'를 읽고

    김숨 작가의 ‘L의 운동화’에는, 화자가 L의 운동화를 보고 있노라면 떠올리게 된다는 작품 두 개가 지속적으로 언급된다. 하나는 요셉 보이스의 <죽은 토끼에게 그림을 설명하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잠이 든 뮤즈>이다.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내가 대학교 학부 시절, 당시 룸메이트와 같이 미술사 수업 조별 과제로 조사했던 작가였다. 브랑쿠시는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여러 개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이 점점 추상화되고 단순화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잠이 든 뮤즈 또한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


    책을 읽는 내내, 잠자는 뮤즈의 금색 얼굴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평온하게 감고 있는 두 눈.


    그래서 잠자는 뮤즈를 검색해보았는데, 내 기억 속의 뮤즈와 많이 달랐다. 내 기억 속의 잠자는 뮤즈는 머리카락이 없는 맨들맨들한 민머리였고, 좀 더 부처님의 미소에 가까운 평온한 모습이었는데, 실제의 모습은 내 기억보다 날카롭고 머리는 거칠며 눈의 흔적은 거의 없었다.


Constantin Brancusi, Sleeping Muse. 사진 출처: http://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88458

    브랑쿠시가 만든 다른 잠자는 뮤즈들도 찾아보았다. 잠자는 뮤즈의 초창기 버전부터 얼굴 형체가 거의 사라진 뮤즈 사진까지.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내 기억 속의 뮤즈는 없었다. 나는 브랑쿠시의 작품들을 보고 여러 뮤즈의 중간 즈음의 얼굴을 만들어 내어 나만의 잠자는 뮤즈로 기억했나 보다.


    문득, 브랑쿠시를 조사하는 과제를 같이 했던 룸메이트가 생각이 났다. 우리는 4년 반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방을 같이 쓰면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서로에 대해 무심한 듯하면서도 애틋한 사이였다. 뜬금없이 속마음을 털어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방학이 아무리 길어도 개강해서 다시 만나면 방학이 일주일이었던 것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자매 같은 친구였다. 나만의 잠자는 뮤즈처럼, 나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그 친구에 대한 기억과 인상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또 그 친구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연락해서 만났다.


    우리 둘 다 기억 속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잠자는 뮤즈의 실제 모습'은 알지 못한다. 기억은 안 나지만 4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 기분이 상한 날도 있었을 것이고, 정말 즐거웠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둘 다 '자신만의 잠자는 뮤즈'를 마음이 정말 잘 맞았던 룸메이트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만나 옛날이야기를 하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이 또한 복원작업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지난 기억들과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감정들 – 호감과 우정 – 이 영속하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한편으로는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겪었던 일들, 깨달았던 것들, 생각들을 서로 공유하는 작업. 이 작업은 마치 어떤 작품을 복원할 때 그 작품의 최초의 모습과 지나온 세월을 동시에 담아내는 작업과 같지 않을까. 사진으로 남아있는 기억은 실제의 뮤즈에 가깝게 복원하고, 나머지 기억들은 나만의 뮤즈로 복원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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