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작가의 'L의 운동화'를 읽고
김숨 작가의 장편소설 ‘L의 운동화’ 출간 기념 북 토크에 갔다. 부끄럽지만 사실 이한열 열사도, 6월 항쟁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이한열 열사가 사망한 1987년은 내가 태어나기 전이었고, 나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이과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다. ‘L의 운동화’ 북 토크에 간 것도 6월 항쟁이나 이한열 열사에 관심이 생겨서 간 것은 아니었다. 가끔 눈에 띄는 책을 읽고 북 토크가 열릴 때 찾아가서 듣다 보면, 내가 책을 읽었을 때는 알지 못했던 다른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종종 찾아가는 나의 소소한 취미 중 하나일 뿐이었다.
‘L의 운동화’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복원은 단순히 어떤 유물이 만들어진 최초의 상태로 돌아가도록 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 유물이 지금까지 거쳐온 세월의 흔적 또한 유물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 속의 복원가는 L의 운동화 복원 작업에 착수하기까지, 그리고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복원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다시 말해, 복원은 시간성과 영원성을 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본디 변하는 자연의 현상을 담으면서도 최초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복원해야 하는 것은, 28년 전 L의 운동화가 아니다. L이 죽고, 28년이라는 시간을 홀로 버틴 L의 운동화다. 1987년 6월의 L의 운동화가 아니라, 2015년 6월의 L의 운동화인 것이다.
28년 전 L의 발에 신겨 있던 운동화를 되살리는 동시에, 28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숨 작가는 죽은 아내가 살아생전 그린 풍경화를 복원하고자 하는 일흔이 넘은 사내 이야기도 담고, 뒤샹의 ‘제발 만지시오’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풍경화를 복원하고자 하는 일흔 넘은 사내에게 "복원"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남은 사람을 위한 애도 행위인 것이다. 또 뒤샹의 ‘제발 만지시오’는 처음에는 여성의 가슴 형체를 띄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납작하게 변했는데, 납작해진 모습 그대로를 굳혔다. 즉, 복원은 최초의 순간이 영원하기를 염원하면서 동시에, 지난 세월을 견뎌내면서 생긴 지혜를 담아내는 작업인 것이다.
복원은 우리가 오래 기억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처음 순간의 모습과, 세월에 따른 변화를 모두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슬픈 기억은 애도를 하고, 좋은 기억은 함께 나누고, 선조들의 지혜가 우리의 역사가 후손에게 전해지도록.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으로 발전하길 바라면서.
물론 그 바람과는 달리 기억과 지혜를 전달한다고 해서 그것이 후손에게 오롯이 전달되어 사회가 진일보하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있던 기억과 지혜마저도 사라지고 자꾸 후퇴한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사회는 지금 ‘복원작업’ 들을 하고 있는 걸까?
‘L의 운동화’에 대한 민음사 포스팅: http://blog.naver.com/minumworld/220732607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