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전쟁으로 얼룩진 서글픈 근현대사 역사를 지니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장융의 "대륙의 딸"은 그중에서도 지금의 중국을 만든 아픈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기록 문학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 가족의 생존기도 생존기지만 이를 글로 남기기 위해 작가의 어머니가 60시간에 걸쳐 녹음하였다는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다.
1900년대 일제의 침략과, 이에 저항하기 위해 싸운 국민당과 공산당, 공산당의 혁명과 대기근과 문화혁명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서로를 잔인하게 학대한 역사 속에서 작가의 외할머니, 어머니, 작가의 삶을 이야기한다. 오늘의 계급의 적이 내일부터는 권력자가 되어 복수를 하고 또 내일은 다시 새로운 권력자가 나타나 핍박하는 일상과 이를 묵인하고 심지어 무지를 장려하는 당국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한다.
마지막에 작가는 마오쩌둥을 하나의 "철학자"라고 간주해보았을 때, 마오쩌둥의 이론은 단지 그의 성격의 연장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싸움을 조장하는 능력이 타고난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한다.
p.759
... 마오쩌둥 철학의 핵심 원칙은 갈등에 대한 천부적인 필요 및 욕구였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마오쩌둥 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투쟁이 역사의 원동력이며,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계급의 적들"을 계속 대량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 그는 질투와 원한 등 인간의 각종 본능을 잘 이해했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그런 본능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어 통치했다.
... 마오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무지 예찬이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계급이 대부분 문맹이었던 인민들의 손쉬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마오쩌둥의 계산, 정규 교육 및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마오쩌둥 자신의 깊은 반감과 중국 문화의 위대한 인물들을 경멸하도록 만든 마오쩌둥 자신의 과대망상증, 건축과 미술, 음악 등 마오쩌둥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중국 문명의 여러 분야에 대한 그의 경멸로 인해서 마오쩌둥은 중국 문화유산의 대부분을 파괴했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상처만을 남긴 중국을 떠나 영국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그러나 이후 1989년 천안문 사건에 대해서는 단 몇 줄로 언급하고 별일 없었다는 듯이 "오늘의 중국은 많이 달라지고 좋아졌습니다" 하고 얼렁뚱땅 넘어간다. 마오쩌둥이 죽고 일찌감치 중국을 떠나서 박해를 받았던 기억과 감각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아직 중국에 남아있는 가족들 때문에 단어 선택을 신중하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씁쓸함은 감출 수 없었다.
p.777
런던에 돌아와 있던 나는 텔레비전으로 학살 장면을 보았을 때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방자가 되었던 그 사람이 실제로 진압명령을 내린 것일까?
공포 분위기가 잠시 되살아났으나 마오쩌둥 시대의 전면적이고 파괴적인 위력은 없었다. 오늘날 각종 정치집회에서 중국인들은 당 지도자들의 이름을 들어 공개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