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기 3_신생아실 별명이 아저씨라니
2019년 9월 16일, 월요일.
올해 가을은 일찍 왔다.
지난 계절은 폭염으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느끼던
몇 해 동안의 강렬하고 폭력적이던 여름과는 달리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리지 않고 다들 수더분하게 여름을 날 수 있었던 자연스러운 여름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름의 더위가 꺾이기보다,
가을의 신선한 바람과 예뻐진 하늘의 기세가 제 자리를 빨리 찾은 것 같은 계절이 9월이 되자마자 짙어졌다.
그렇게 2019년의 9월은 이미 가을이 짙어 하늘이 높고 청량한데 구름은 예쁜 달이었고,
그중 16일은 해가 밝게 드는 날이었다.
입원해있던 병실 침대에서는 큰 창으로 푸릇푸릇한 병원의 조경과 밖의 풍경이 잘 보였고,
배를 갈랐던 대가로 물 한 모금도, 베개도 없이 8시간을 누워있어야 했던 동안
쨍쨍하고 가을 햇살이 환하게 드는 낮을 감상 했다.
너의 날, 너를 반겨 주는 하늘과 바람과 계절과 햇살이라 생각했다.
'해든' 너의 날 다운 그 날의 날씨가 고마웠다.
수술실에서 잠시 봤던 얼굴이 아른거려 어서 다시 보고 싶었다.
갓 태어난 여느 아가들처럼 고구마 색 자줏빛일 거라 생각한 것과 달리
너는 너무 뽀얗고 깨끗해서
세상 밖으로 나올 거라는 어느 예고도 없이 꺼내져야 했었을 미안함이 무색하게
이미 누구보다 준비된 채로 단장까지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린 아이 같았다.
눈 애교살 아랫 두덩이가 내내 긴장된 채로 안쓰런 표정을 하고서 옆에 있던 오빠는
해든이가 보고 싶다는 얘기에 신이 나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왔고
우리는 정말 엄마 아빠가 된 모습으로 구석구석 너의 미모를 칭찬하기 바빴다.
봐도 봐도 이렇게 예뻤던 아가는 처음이라 이게 정말 엄마의 눈이 된 것인지,
누가 봐도 예쁜지 궁금했지만 우리 둘은 함께 너에게 반했고 그렇게 자꾸자꾸 감탄하며
같은 사진과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8시간이 지나 사진으로는 갈증이 나서 도무지 살아 움직이는 너를 보고 싶은 마음에
침대만 살짝 흔들려도 배가 찢어지는 아픔도 괜찮을 것 같다고
처음 몸을 일으켰을 때에 칼 여러 개를 배에 꽂아 뒤트는 듯이 아팠고
침대 옆 책상에 잠시 기대 서서 여태껏 느껴본 적 없던 고통에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몸의 아픔만으로 이렇게 비명이 나오고 눈물이 나는 건 처음이었다.
힘을 내보자며 격려하고 나를 일으키다 어찌할 줄 몰라하던 오빠의 슬프고 놀란 눈을 기억한다.
다음 날이 되어 여전히 칼에 꽂힌 채 몸을 쓰는 아픔을 여러 종류의 마취제로 견디며
다시 몸을 일으켰고 휠체어에 앉아 유리창 너머 너를 처음 보았다.
이렇게나 작고 작고 소중한 존재가 새로 생겨났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여전히 신기한 것은 이제 사람으로 태어난 지 이틀이 된 네 표정이 굉장히 의젓했던 것과
그 얼굴이 신생아보다는 백일쯤은 거뜬히 살아 낸 아이의 얼굴이었다는 것이다.
이건 꽤 많은 사람들이 보자마자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였으니
태어날 적부터 네 얼굴은 어른스러웠다 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병원을 퇴원할 때 들어보니 신생아실에서 너는 아저씨로 간호사 선생님들께 불리었나 보더라.
지금은 네가 태어난 지 열흘이 지났고,
방금 너에게 젖을 먹이고서 다시 또 젖을 먹이기 전에
이 소중한 기억이 희미해질까 겁이 나던 참이다.
너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표정이 늘어간다.
그래서 벌써 열 가지쯤 되는 다른 표정을 보여주고,
웃을 때에는 양쪽 입가에 보조개를 지을 줄 안다.
그건 아주 치명적으로 기분을 좋게 하지만 자주 웃어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어른스러운 얼굴로 골똘하고 진지한 표정을 자주 하고 있고,
가끔 양 미간을 찌푸린 채 아주 심각한 고민이 있는 듯할 때는
너무 귀엽고 재밌어서 소리 내어 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