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만 남을 뿐
페어 출품작들을 반입하고 돌아옵니다.
나도 작품들과 함께 런던으로 떠날 몸이었으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좌절되었지요.
현대미술의 시작,
언젠가 내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
작년에는 모든 지원을 받고 무려 런던에서 공동작업을 할 기회도 포기했어요.
임신 중이었거든요.
인연이 아닌가 보다는 내 한탄에 웃지 마세요.
인연이 아닌 게 아니라, 엄마가 되어서니까.
나는 이유를 아는데, 왜 다들 모르는 척하십니까.
나는 사실 전염병이 무섭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 현장에 있을 때에는 티푸스에 걸리고 죽다 살아나고도
땟구정물 양동이 그릇에 내어 주는 50원짜리 국수도 잘 얻어먹었는걸요.
아이가 있으니까요.
태어난 지 5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까요.
친정엄마-아이가 있는 여성의 육아 아닌 다른 일과를 가능하게 하는 건 다른 여성(가족이어도, 남이어도)의 희생이죠-에게 맡겨두고 다녀오려고 했었어요.
사실 이 난리 통에도 괜찮다 판단했고-나 혹은 아이가 위험할 일은 아니니까- 다녀올 생각이었어요.
내 아이를 전혀 양육하지 않는 우리 아이 주변의 모두가 유난스럽지만 않았다면.
ㅡ
혹시 런던의 배터시를 아시나요.
네 애플 본사도 옮겼다는 그 화력발전소 맞아요.
제2의 테이트 모던이라는 별명을 달고 더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는 그 건축물.
거기서 일주일간 하는 페어에 출품을 했답니다.
뭐 별거 아닌 척하려 했지만 와 너무 설레었어요.
지금까지 해외 페어는 돈이 없어 못 갔지만
이번엔 1년 동안이나 임신해서 일 한 돈을 떼서 모아두기도 한 걸요.
딱 10년 전 배낭여행을 하면서 테이트 모던에서 나도 여기에 전시하고 싶다고 기도했던
불가능 한 꿈이라 간절하기보다는 차라리 요행을 바라는 꿈같은 그런,
노란 머리 미대생의 스치던 기도를 떠올리고 마음이 더 벅찼었지요.
그곳에 내 그림이 걸려있는 걸 볼 수 있다니.
거기서 내 그림을 마주하게 되면 내 인생의 어느 빛나는 순간이 될 거 같았어요.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할 거 같았어요.
다음 10년을 기약하면서 내 가능성을 더 믿을 수 있을 거 같았고,
내가 꾸는 꿈은 이루어질 거라고 평생 희망적인 사람이 될 거 같았어요.
ㅡ
좋았던 기분은 그만 떠올릴래요.
아무도 나의 이런 사소한 여행이 취소되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걸요.
나는 언제나 좌절됩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싸워보지도 못한 채 좌절됩니다.
내 인생에 아무리 대단한 순간이 코 앞에 있더라도
엄마는 아이와 있어야죠.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아도
엄마는 애를 혼자 두고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죠.
남편이 오로라도 보여주고 고래도 보여준대요.
고래가 하늘 위에서 헤엄치는 광경을 보게 된다면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할까요.
그때쯤이면 내 그림은 어디에 있을까요.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