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쓰러지고....
추수감사절 연휴를 앞둔 수요일 오후, 남편이 오후 3시 퇴근 후 첫째 아이의 4시 태권도 수업에 같이 가겠다며 둘째까지 차에 태워 가족이 총출동했다. 낮잠을 제대로 못 잔 둘째를 남편이 맡기로 하고 내가 첫째 태권도장에 따라 들어갔다. 30분 수업이 끝난 후, 차에 타는데 뒷좌석 커다란 비닐 봉지에 선명하게 박힌 “Total wine & more”. 둘째는 이미 쓰러져 잠들었고 남편의 뒷모습만 봐도 잔뜩 신난 어깨가 저 비닐 봉지에 뭐가 들었는지 충분히 추측 가능하게 한다.
한국의 추석과도 같은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 저녁 뉴스를 보니 1.3 밀리언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니 대단한 명절인 것은 분명하다. 결혼 후 거의 매년 추수감사절엔 초대를 받아 씨끌벅적하게 보냈던 것과 달리 조용히 보내게 되었고 오히려 우리 가족 4명이 단란? 하게 보내게 될 것 같아 부담 없이 연휴를 맞이할 수 있었다.
남편은 -요즘 한창 칵테일 만들기에 심취해 있다- 모히또 제작을 위해 rum과 소다, 라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신선한 민트를 집에 오는 길에 구입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식사도 마다하고 입가심으로 맥주를 들이붓더니 바로 모히또 제작에 들어갔다. 아이 둘 저녁 먹이는 동안의 제작 속도와 흡입 속도를 보아하니 내가 아이 둘을 재우고 오면 꽐라가 되어 나도 못 알아보고 혼자 신나게 쓰러져 자고 있을 것이 뻔히 보여 애들 재우러 가기 전에 신신당부를 했다.
“ 같이 즐기자!!!”
아이 둘 모두 재워 놓고 샤워까지 마치고 거실로 나가니 한껏 취한 남편이 모히또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저녁 8시 40분. 남편의 세 번째 모히또와 나의 첫 번째 모히또가 만들어졌고 꿀떡꿀떡 금세 비운 모히또는 네 번째 잔과 두 번째 잔으로 채워지는가 싶더니 남편은 네 번째 잔을 채 비우지 못하고 소파에 쓰러졌다.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나의 두 번째 잔과 주인을 잃은 남편의 네 번째 잔까지 모두 내 입속에 털어 넣고 입가심으로 컵라면까지 끝내고-오... 나의 위대함이여...- 남편을 깨워 안방으로 보내고 나는 승자의 여유로운 미소로 이를 닦는다. 이 승자의 미소가 내일은 띵띵 부은 40대 아줌마 얼굴에 가려지겠지. 아. 배불러.... 마지막 컵라면은 먹지 말 걸 그랬나 보다. 앞으로 나흘간의 긴 연휴 동안 신나게 쉬고 놀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