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로운 영혼 May 14. 2020

익숙하지 않음이 주는 불편함.

코로나로부터의 해방

       내가 사는 카운티 (Harris County)는 4월 말부터 외출 시엔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행정명령이 떨어졌다. 어길 시엔 벌금 1000불이 부과된다 했다. 그러나 텍사스 주지사의 마스크는 의무가 아니라는 발언과 함께 자기 말이 텍사스 주 내에서 그 어떤 행정명령보다 강력하다 한 후 쓰기도 그렇다고  안 쓰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마트에 가 보면 그래도 95% 이상은 쓰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하나 아이 둘과의 동네 산책길은 이미 아침 9시에 거의 30도에 육박하는 날씨라 마크스를 쓰고 걷자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만 4살인 첫째는 엄마가 쓰니 따라 쓰기라도 하는데 만 1살인 둘째는 절대 쓸 생각이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산책 길에 만나는 동네 사람들은 거의 쓰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아니 거의 쓰지 않은 게 아니라 마스크를 쓴 사람은 나와 내 첫째뿐이다. 물론 그들이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는 건 아니지만 산책길이 좀 여러모로 불편한 게 사실이다.


     휴스턴 내 식당들도 포장만 가능하던 지금까지의 방식에서 5월 1일부터 식당에서 식사도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단 , 전체 수용인원의 25% 내에서만 손님을 받도록 했다. 4 테이블이 있는 식당이면 1 테이블만 받도록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다시 여는 추세이고 극장이며 박물관도 다음 주나 곧 다시 운영을 재개한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에 나도 이제 편승하고 있다. 거의 두 달간 집에 머물면서 애 둘 삼시 세끼에 두 놈과 씨름하며 지내느라 지친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아이 둘을 차에 태우고 동네 드라이브도 다녀오곤 하는데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식당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얼마 전엔 아이 둘을 데리고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드라이브 쓰루에 들어섰는데 오전 10시 반에 줄을 서 있는 많은 차를 보고 내가 너무 빡빡하게 살았나 싶었다. 애들 밥 해 먹인다고 주방에서 하루의 절반을 소비했던 나를 원망하고 다독여야만 했다. 요즘은 음식도 배달해 먹고 대충 해 먹기도 한다. 아이들도 드라이브 다녀오는 길에 사 오는 햄버거며 밀크 셰이크를 사랑한다. 배달해 먹는 음식도 잘 먹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차를 타고 달리는 것에 매우 만족해하는 것 같다. 보름 전인가 아이 둘을 데리고 우체국의 드라이브 쓰루 편지함에 편지를 넣고 오는 길이었는데 뒷자리에 앉은 첫째가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목소리며 가사에 애환이 녹아나 녹음까지 했는데 가사는 이러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는 집에 밖에 못 있어. 마트도 못 가고 놀이터도 못 가고 키즈 카페도 못 가고 슬퍼~~ 마트도 못 가고 놀이동산에도 못 가고 우리 집에 밖에 못 있어!!!]


아이가 제일가고 싶은 곳이 나열되는데 그 목소리가 간절하여 웃기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첫째에게 통잠을 자면 칭찬스티커를 붙이도록 했다. 겨우 20개를 채우기 위해 거의 다섯 달이 걸렸다. 칭찬 스티커를 다 채우는 날엔 아빠랑 키즈 카페 간다고 좋아했는데 그 날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다. 오늘 다시 새로운 칭찬스티커 종이를 벽에 붙여 줬다. 이번엔 다섯 달보다는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다 완성 한다 해도 언제 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첫째 아이 태권도장은 3월 초 이후로 zoom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유튜브로 태권도를 연습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어 일단 수업 참가를 잠시 멈추고 6월 말까지는 도장에 나가지 않겠다고 알렸다. 그런데 이번 주 월요일부터 직접 대면 수업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니 가뜩이나 집에서 지루해하는 아이인데 데리고 가야 하나 고민이 된 게 사실이었다. 그러다가도 아직은 뭐든 물고 빨고 입에 가져가고 보는 둘째가 항상 오빠 가는 곳에 1+1으로 따라가야 하니 수업 참가는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조금 더 지켜봐도 될 듯하다.


     코로나 이전의 상황은 없을 거라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삶은 아직 낯설기만 하다. 기약된 것이 없고 많은 것들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한국에 계신 엄마도 병원에 입원 하신지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면회가 안 되니 마음이 쓰인다. 간병인과만 병원에서 지내고 계시는데 집에 계신 것보다 병원에서 간호받는 게 더 나은 것 같다가도 답답하실 것 같아 영 신경이 쓰인다. 얼마 전 전원을 하면서 언니가 엄마와 반나절을 함께 할 때 보고 싶었다는 말씀을 하셨다니 평소 그런 말씀을 안 하시는 엄마라 적잖이 놀랐다. 엄마 문제로 급하게 한국에 귀국한 언니도 형부와 떨어진 지 어느새 두 달이다. 8월에 한국에서 재회하기로 했다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첫째는 프리스쿨에 갈 필요가 없으니 한국 방문에 이 보다 더 좋은 시기가 없는데도 백수인 둘째까지 데리고 비행기 안에서 어찌 안전하게 가며 도착해 2주간 격리는 어떻게 가능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방역을 자랑하는 한국에 누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망설여 지기도 한다. 무엇 보다 자가 격리를 끝낸 후 한국에 머문다 해도 엄마 병문안이 안 되니 미국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미국에 다시 돌아와서도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그냥 엉덩이 붙이고 집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한 시나리오 같기도 하다.


      2020년 ,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 다운을 볼 때만 해도 2020년이 이렇게 진행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뉴 노멀이라도 좋다. 부디 노멀을 벗어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