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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영혼 May 20. 2020

울며 잠든 내 새끼

엄마는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일전에 지금은 56개월인 첫째의 잠으로 고생했던 얘기를 썼던 적이 있다. 여전히 통잠은 가뭄에 콩 나듯 일어나는 일이지만 수면 의식이 짧아졌고 무엇보다 잘 자라는 인사만 하고 나오면 되니 스트레스로 다가오던 아이 재우는 시간이 반갑기까지 하다. 그 후로는 나의 시간이니 말이다. 밤에 한 번 깨서 안방으로 넘어오는 건 이제 애교 수준이다. 적어도 울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두 번씩 깨면 다음 날은 하루 종일 피곤한 수준을 넘어 평소 같으면 혼내지 않을 일도 괜히 더 혼내게 된다. 첫째가 밤에 4-5번씩 깰 때는 어떻게 살았나 싶다. 


     미국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3월 초부터 첫째 아이의 프리스쿨을 비롯한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아 아이 둘을 데리고 꼼짝없이 집에서만 지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새 5월 중순을 지나니 나도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 1시간 만이라도 조용히 지내고 싶으나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내내 붙어있는 데다 요 두 놈의 자기 영역 쟁탈전이 나날이 심해지는 탓에 돌아가며 징징거리고 울어대는 소리에 매우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게다가 한국에 계신 엄마가 허리 수술까지 앞두고 있어서 내내 곤두서 있었다. 오늘 아침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 5시 반에 울며 "엄마~엄마~"를 부르는 둘째 방으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한채 젖을 물리러 갔다. 보통 7시 반에 잠들어 중간에 깨지 않고 10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새벽에 깨더라도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곧 첫째가 나를 부르며 둘째 방으로 넘어온다. 그 새벽부터 둘은 서로 엄마인 나를 독차지하려 신경전이었다. 항상 있는 일이다. 이럴 때는 얼른 애 둘을 데리고 거실로 나와 아침을 먹이는 게 상책인데 어젯밤에 늦게 잠들었더니 나도 바닥에 널브러져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7시도 안 된 시간에 아침을 먹이고 난 후 2시간도 채 안 지나는 동안 둘째가 열 번은 족히 울었던 것 같다. 이유 없이 첫째는 둘째를 쫒아 가 못살게 구는 것처럼 보였다. 둘째가 인디언 텐트로 들어가면 얼른 쫒아 들어가고 바로 둘째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둘째가 가지고 놀려고 손에 잡는 장난감은 어느새 본인이 가지고 놀겠다며 낚아채 가지고 가기가 일쑤였다. 내가 옆에 붙어서 중재하면 되는데 오늘따라 주방에 쌓여있는 설거지가 눈에 거슬려 주방 정리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결국 나도 소리를 지르고 첫째 팔을 사정없이 잡아당겨 아이 방으로 끌고 가 10분 동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둘째도 똑같이 했으나 20개월인 둘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아이 둘의 대성통곡이 집안에 쩌렁쩌렁 울리고 이번 주엔 오후 출근인 남편도 나와서 동태를 살핀다. 그러더니 내 다리에 매달려 울던 둘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간다. 부랴부랴 일을 정리하고 애 둘을 데리고 나가는 게 낫겠다 싶어 애들 먹을 것들을 챙겨 차로 15분여 거리에 있는 공원에 갈 요량이었다.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한낮 더위처럼 뜨거웠다. 휴스턴은 요즘 낮에 30도를 훌쩍 넘는 더위라 일찍 움직여야 한다. 결국 방향을 틀어 평소 가보고 싶었던 바다로 향했다. 


     갈베스톤(Galveston)은 1시간여를 남쪽으로 달려야 하는 반면 오늘 처음 가 본 라 포르테(La Porte)란 곳은 3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해변이었다. 차에 올라 타 첫 번째 신호등을 채 만나기도 전에 둘째는 곯아떨어졌다. 그래서 오늘 아침 유난히 많이 울었나 보다. 요즘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사는 첫째는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한다. 아침에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났는데도 변죽 좋게 어찌나 들이대는지...  바닷가 출신인 나는 파도 소리랑 비릿한 바다내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침 10시도 안 된 시간인데 사람들이 꽤 보였다. 그래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수준은 되니 안심하고 아이들을 놀렸다. 아이들도 뜨거운 모래사장을 지나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며 매우 만족해했다. 11시가 넘어가자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해 아이들과 서둘러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커다란 공장에 대해 얘기도 하고 평소 첫째가 궁금해하던 것들에 대해 잔뜩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 "왜"라고 질문을 하니 답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엄마, 나뭇잎은 왜 떨어져?"


날이 추워지면서 뿌리에서 물을 충분히 빨아들이지 못 한 나뭇잎이 말라서 떨어지는 거라 설명하면서 세상엔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첫째가 


"사람도 마찬가지야? 엄마, 사람은 왜 늙어? 엄마도 늙어?" 란다.


내 친정엄마께서 파킨슨으로 병원에 누워 계신데 불과 몇 달 전에 비해 말씀도 어눌하시고 움직임도 전혀 없으시니 첫째에겐 낯선 모습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통 영상통화도 힘들었는데 어쩌다 연락이 된 후 부쩍 눈에 띄게 안 좋아지신 모습에 첫째는 조금 낯설어했다. 첫째에게도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고 알려드렸다. 그 후 어쩌다 할머니와 연락이 닿으면 "할머니. 사랑해요. 얼른 나으세요"라는 말을 수줍게 전한다. 그렇게 우리의 짧은 바닷가 여행을 마쳤다. 


     오늘 밤엔 늦게 퇴근하는 남편 덕분에 평소보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아이 둘을 재웠다. 둘째는 여느 때와 같이 7시 반에 잠이 들었고 첫째와는 워크북도 같이 하고 책을 읽어 준 후에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어느새 대화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니 갑자기 감개무량하다. 요즘 너무 심하게 야단치기도 했고 오늘 낮에 바다를 보고 왔더니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긴 탓도 있었다. 바닷가에 다녀온 일을 회상하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노래를 불러주는데 첫째가 갑자기 


"엄마도 할머니처럼 나이 들면 작아져?" 라며 슬픈 목소리로 묻는다.


"엄마도 늙으면 작아지지"


"엄마는 언제 늙어?"


"엄마는 지금 늙고 있지...." 


내 대답을 들은 첫째가 갑자기 흐느끼더니 


"난 엄마가 늙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늙어서 작아지고 사라지는 게 싫어" 


라고 말하는데 그만 나도 눈물이 났다. 흔들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붙잡고 대답을 이어갔다.


"엄마는 @@이 옆에 항상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이 유치원에 가면 엄마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엄마가 항상 이든이 마음속에 있는 것처럼 항상 같이 있을 거야. @@이가 나이 들어도"


눈물을 닦으며 그래도 엄마가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첫째의 내 손을 잡는 손길이 오늘따라 더욱 슬펐다. 요즘 내가 그런 마음이거든... 오늘은 첫째가 잠들 때까지 꼭 안아주었다. 


그렇지만 그건 안다. 첫째야.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엄마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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