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징글한 미국 벼룩
처음에는 모기에 물린 자국이라 생각했다. 휴스턴은 습하고 더운 날의 연속이라 모기를 일년 내내 볼 수 있고 보면 당연히 물릴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물린 자리가 죄다 무릎 아래인데다 배 부위에 물린 것은 두 세개씩 연달아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그 가려움은 모기 물린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모기 물린 것도 심히 가려운데 벼룩에 물리면 그 보다 5배는 더 가려운 것 같다. 결국 피를 보게 된다. 지금 내 양 다리며 배에 위치한 벼룩의 흔적은 무려 30군데에 달한다.
아침이면 뒷마당에서 키우는 방울 토마토며 깻잎 그리고 각종 허브들에 물을 주러 나가는데 그 사이 물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 일주일 전, 새벽 5시 반 정도에 깬 둘째 방에서 첫째의 아침잠을 최대한 방해 하지 않기 위해 카펫 위에 깔아 놓은 메트에서 둘째와 책도 읽고 뒹굴뒹굴 놀고 있었다. 그러다 옆구리 쪽이 따끔한 느낌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는데 그때 부터 가려움은 참기 힘들 정도였다. 벅벅 긁다가 상처가 남을까 싶어 물린 자국 주변만 긁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보통 모기 물린 자리는 손톱으로 십자를 만들어 눌러주면 시원해지는데 이번엔 전혀 시원하지 않고 아프기만 했다. 이때만 해도 벼룩이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못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부터 주로 정강이 아래로 양 발에 하루 2-3군데씩 물린 자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밤에 첫째나 둘째가 교대로 깨면 아이들 방에 가는 건 나의 임무인데 그럴 때 마다 따끔따끔 물리는 느낌과 빈도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벼룩이라는 강한 믿음과 확신으로 남편에게도 얘기해보았지만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니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편은 물론이고 내가 물렸던 방에서 자는 첫째와 둘째도 전혀 물린 자국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시큰둥한 반응에 억울한 감정보다 벼룩이 집에 있다는 사실에 머리가 쭈뼛쭈뼛 서기 시작했다. 밤에 아이들이 깨서 나를 찾으면 잠을 못 자는 것은 괜찮은데 기분 나쁘게 물리는 느낌이 너무 싫어 아이들 방에서 밤에 물려오면 결국 밤새 뜬눈으로 벼룩 퇴치 방법을 검색하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벼룩과의 징한 인연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LA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우스 메이트가 새로 들어온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를 비롯해 2명의 하우스 메이트가 밤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벌레에 사정없이 물리기 시작했다. 집주인과 얘기 한 후 벼룩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벼룩 잡는 트랩이며 벼룩 밤(Bomb)과 스프레이를 모두 동원해서 약 한달 만에 퇴치했던,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아침 마다 벼룩 트랩에 잡힌 벼룩의 숫자를 세는 것이 일상이었다. 많게는 10마리도 죽어 있었다. 물려본 사람은 알텐데 말 그대로 소름이 돋는다. 모기는 눈에 보이기라도 하고 윙~~~ 하며 날아다니는 소리라도 나는데 벼룩은 불을 끄면 어디선가 나타나 몸의 이곳 저곳을 따끔하게 물어놓는다. 잡으려고 불을 바로 켠다 해도 절대 찾을 수 없다. 심지어는 낮에도 물렸고 나의 직장까지 쫒아와 바지속에서 나를 뜯어 먹기 까지 했다. 실험을 하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가 바지를 벗고 미친듯이 털었던 기억이 있다. 밤엔 너무나 졸린데도 벼룩에 물리는 것이 무서워 불을 켜고 하얀 침대 커버만 노려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벼룩이 "탁" 튀어 올라왔고 그 순간 잡으려고 손바닥을 들어올리는데 이미 벼룩은 튀어가고 없었다. 어찌나 재빠르던지 그러나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비장해졌다고나 할까...그때가 결혼한지 1년이 막 지났을 때 였는데 남편은 동부에 나는 서부에서 장거리 살림살이를 할 때였다. 남편은 넓직하고 쾌적한 신혼집에서 편하게 사는데 나는 물가 비싼 서부탓에 허름한 집에 방하나 빌려 사는 것도 처량했고 그나마도 벼룩으로 고생한다고 생각하니 그 당시만 해도 여간 억울한게 아니었다. 남편이 벼룩을 내 방에 풀어 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때 전화기로 푸념을 넘어 육두문자만 안 썼지 욕을 능가하는 짜증을 부렸기 때문에 남편과 사이도 별로 안 좋았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그때는 너무 억울했단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벼룩을 쫒아 낸다는 나무칩이며 약들도 보냈고 비행기로 6시간 거리에 사는터라 달려와 해 줄수 있는 것도 없는데 전화로 짜증만 내고 본인 탓을 하는 것 같았단다. 그런데 그때 나는 벼룩에게 육체적으로 물어 뜯기는 것 보다 정신적으로 물어 뜯기는 느낌이었다. 정말 탈탈 털렸다.
그런데 7년이 지난 지금 그 일을 똑같이 겪고 있으니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남편은 믿지 않고 나는 보이지 않는 벼룩과 또 싸워야 하다니. 아니 무방비로 당하고 있어야 하다니. 그러다 3일 전 아침에 남편이 예전에 야구한다고 사놨던 긴 하얀 양말을 신고 첫째 아이 방 의자에 앉아 있었다. 1분도 되지 않아 까만 벼룩이 양말 위에 앉았다. 벼룩인가? 하며 잡으려고 하는 순간 잽싸게 튀어가는 것을 보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적의 모습을 확인했으니 이제 정확히 공략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남편이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일주일에 한 번 돌리던 진공 청소기를 매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하얀 침대 커버 위에 낯익은 긴 다리의 벌레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튀어 도망갈까 싶어 얼른 검지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다행인지 죽어 있었다. 얼른 투명 테이프로 고정한 후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이 잘 볼 수 있도록 벽에 붙여 놓았다. 퇴근한 남편도 벼룩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더니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다음 날 아침 바로 벼룩 트랩을 사오고 뒷마당에 칠 약도 사왔다. 트랩을 설치하고 아직 벼룩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나만 여전히 물리고 있고 어제는 거실에서 둘째를 안고 있다가 내 무릎에 앉은 벼룩을 또 보았다. 물론 번개처럼 사라졌다. 소파에 앉아도 아이들 방에서도 심지어 주방에서도 다리 쪽이 따끔따끔 물리는 느낌이 드는데 가족들은 모두 멀쩡하다. 나만 물리고 나만 물리는 느낌으로 예민해지고 있다. 밤새 아이들 방에 오가며 벼룩에 수혈을 당하니 벼룩들이 밤새 배를 불리고 더 이상 식욕이 없는 상태인가 추측해 보기도 한다. 아이 둘은 안 무니 다행인데 남편을 안 무는 건 좀 억울한 면이 있다. 남편은 내가 지저분해서 그렇다는데 더욱 억울한 부분이다.
코로나로 지루하던 일상이 벼룩의 등장으로 다이나믹 해졌다. 감사해야 할 일인가 싶다가도 벼룩과의 인연은 하루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