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라 했다.
우리의 시작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한국에서의 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박사 후 과정을 할 계획이었으나 박사 과정의 막바지에 갑자기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모든 일정에 차질이 생긴 상황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이 꼭 한 달을 계시다 돌아가셨는데 그 허락된 시간동안 바로 옆 대기실에서 가족들 모두 아빠 곁을 지켰다. 그렇게 박사과정 막바지의 가장 바쁜 시기에 나는 모든 일정을 멈추고 병원에서 지냈다.
그러다 하늘이 보우하사 내가 연구하던 분야에서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을 구한다는 말에 앞뒤 재지도 않고 바로 가기로 했다. 출국 전 날까지 실험실에서 논문 데이터 정리를 했고 출국 당일은 오전에 졸업식에 참석하고,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한 후 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표를 급하게 구한 데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것도 아니어서 낯선 LA 공항에서 10시간을 대기해야만 했다. 그 차가운 공기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한국에서 시작하는 직장 생활도 수월하지 않을 터인데 내 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내 생애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다니 미국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나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긴장으로 똘똘 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볼티모어라는 동부의 작은 도시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기로 결정한 후 많은 도움을 줬던 석사과정 중인 그녀를 점심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과 동기라며 두 명을 더 데리고 나왔는데 한 명은 나 보다 한 살이 어린 남자, 다른 한 명은 나와 생일이 같은 동갑내기 여자였다. 통성명을 하고 가벼운 대화들을 이어가다 그 남자는 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난 후 기억나는 건 말투며 행동이 매우 사무적이고 차갑다는 것이었다. 나는 첫 월급을 타는 날 밥을 쏘겠다는 말을 약속처럼 남겼다.
그리고 근 한 달 반 만에 첫 월급을 타고 연락을 했을 때였다. 다시 만나 식사를 하는데 그 남자는 그동안 한국에 다녀왔단다. 무슨 일이기에 학기 중에 한국에 갔었나 했더니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단다. 그 차가워 보이던 남자에게 내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아빠를 보내드린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빠에 대한 감정들이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의 상실감과 어지러운 감정들이 짐작이 갔다. 그렇게 그와 나 사이엔 공통분모 아닌 공통분모가 생겼다. 물론, 그는 모르게. 나 혼자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