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이룬 버킷리스트

아카테낭고 화산에 가다

by 전혜윰

프랑스 교환학생을 합격했을 당시, 출국하기 전부터 꼭 아이슬란드 여행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대자연과 동물을 좋아했던 나는 주말이면 아빠와 함께 걸어서 세계 속으로나 동물의 왕국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걸 즐겼다.


그리고 20살부터 매년, 버킷리스트에 3대 자연을 보는 것이 소망이라고 써 내려갔다. 내가 손꼽은 나만의 3대 자연은 화산, 빙하, 오로라였다. 아이슬란드는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아주 신비로운 나라였다. 마치 다른 행성에 와있는 것 같다는 후기를 본 후로 나는 호시탐탐 그곳에 갈 기회만 엿보았다.


교환학생을 하며 비싼 그 나라의 물가를 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하기 직전에 저렴한 가격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학생할인으로 항공권을 구매했고 난생처음으로 커뮤니티에서 동행을 구해 비용을 절감할 렌터카 여행을 계획했다.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장님의 방송이 나왔다.


“여러분, 지금 오른쪽 상공에 오로라가 관측됩니다. 모두 행운이 가득한 행복한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그 당시의 방송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초록빛이 일렁이는 그 순간,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행운이 가득할 것 같았다. 아이슬란드 여행 시작부터 오로라를 봤으니, 그 자체로 황홀했다. 아이슬란드는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풍경, 수많은 폭포들과 신비한 지형을 품은 나라였다. 매일이 감탄의 연속이었고 설렘이 가득했다. 거대한 빙하를 눈앞에 둔 그날은 입이 쩍 마르는 것도 모르고 한껏 벌린 채로 몇 분을 서있었나 모르겠다. 다만, 아쉽게도 계절이 맞지 않아 화산투어는 할 수 없었고 나중에 꼭 언젠간 아이슬란드에 다시 가야겠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게 화산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채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중남미 여행을 앞두고 과테말라에 용암이 흐르는 화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루지 못한 나의 버킷리스트를 무려 10년 만에 이룰 수 있는 여행이었다.


안티구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아카테낭고 화산투어를 예약하고 1박 2일 트레킹을 위한 짐을 쌌다. 이른 아침에 시작하여 6-7시간을 꼬박 경사로를 타야 도착하는 그곳이었지만, 고작 한라산 한 번 가 본 내가 무작정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아카테낭고 화산 트레킹의 시작점에 도착하니 곳곳에서 나무 지팡이를 대여해주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길래 지팡이를 입구에서부터 팔지? 하나 빌려야 하나?’


투어버스를 함께 타고 이동한 사람들이 마치 당연한 듯 지팡이를 손에 쥐는 걸 보고 속으로 고민이 되었다. 우린 지팡이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한 개를 대여했다.


지팡이는 신의 한 수였다. 가만히 서있으면 뒤로 넘어갈 것 같은 경사로가 초입부터 계속되었다. 높은 고도로 인해 추워서 챙겨 입은 바람막이가 무색하게 땀이 줄줄 흘렀다. 가이드는 그 길이 트레킹에서 가장 난이도가 낮은 쉬운 길이라고 했다. 두 시간 정도 흘렀을까?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해가 가려지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얼굴은 땀이 나고 더운데 몸은 추웠다. 발은 모래 같은 흙에 푹푹 빠져서 걷기가 힘들었고 사과 하나로 허기를 달랜 뱃속에서는 밥 달라는 아우성으로 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숨은 가빠졌고 머리는 핑 돌았다. 스위스에서 겪었던 끔찍한 고산병이 떠올랐다.


‘포기해야 하나?’


그때 나의 짝꿍이 나에게 미리 챙겨 온 고산병 약을 건넸다. 몸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미리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숨을 제대로 못 쉬는 나에게 가이드는 숨 쉬는 법을 알려주었다. 입이 바싹바싹 말라서 걷는 내내 물을 마셨는데 걷는 중에 물을 마시는 것도 호흡을 방해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알려주었다. 가이드의 도움과 그가 건넨 약 덕분에 몸이 점점 괜찮아졌고 다시 힘을 내어 올라갔다.


내 숨을 찾아가니 고산병 증세도 점점 완화되었고 신기하게 덜 힘들었다.


여행사에서 미리 준비해 준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니 가이드가 트레킹이 3시간 남았다고 알려주었다. 1시간은 계단길이고 1시간은 가파른 경사, 나머지 1시간은 둘레길 같은 평지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10분은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이라 조심하라는 공지를 해주었다.


다시 힘을 내어 모두가 함께 서로를 응원하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느리지만 힘 있는 걸음이었다. 어느 정도 고도에 오르니 땀이 식고 급격히 추워지기 시작했다. 가져온 옷들을 하나씩 걸치고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광 콰콰광’


우리를 환영한다는 듯 검은 연기를 뿜으며 푸에고 화산이 폭발했다. 화산이 코앞에서 폭발하다니..


모두가 한자리에서 탄성을 내질렀다. 베이스캠프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몹시 추웠다. 챙겨 온 핫팩 두 개에 의지하고 외투로 몸을 무장한 후 장작재를 온몸에 뒤집어쓰며 저녁 11시까지 하염없이 화산을 바라보았다. 가만 보니 이 녀석이 30분에서 1시간 주기로 분화했다. 다시 말하면, 30초 정도의 짧은 1번의 폭발을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30분에서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야속하게도, 그 추운 기다림을 몇 번이고 기다릴 만큼 멋있었다. 해가 지고 별이 뜰 무렵에는 새빨간 주홍빛의 마그마의 줄기도 보였다.


몸살 나기 직전에 침낭에 들어가 분화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하지만, 아릴 정도로 아픈 추위에 새벽녘에 잠에서 깨버렸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베이스캠프에 나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화산도 밤에는 자겠지 싶을 만큼 잔잔한 푸에고 화산을 눈앞에 두고 별을 바라보며 여전히 환한 안티구아 동네를 구경하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운동이라도 해야 조금 덜 추울 것 같아서 헬스장에서 써먹던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달밤의 체조'이 말이 딱 어울렸다.


'쾅쾅콰콰콰콰콰쾅콰쾅'


거센소리로 몰아치는 마그마가 뿜어져 나왔다. 경이로웠다.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경이롭다는 단어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새벽에 더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듯 초저녁에 봤던 분화랑은 차원이 달랐다. 모두를 깨워 다 함께 보고 싶을 만큼 놀라웠다. 딱, 딱 한 번만 더 보고 싶었지만 온몸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도 잠잠했다. 찬란하면서 가장 강력했던 30초였다.


아카테낭고 트레킹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 자신과의 싸움이자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화산은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함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남들의 보폭에 맞춰 걷고 숨을 급하게 내쉬었을 때는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내 걸음 속도대로 내 숨을 온전히 쉬었더니 견딜만했고, 추위 속에 기다린 자에게만 본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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