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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유 Oct 27. 2024

혜유와 향 1편

  제사는 완벽하게 진행되어야 했다. 혜유는 제삿날 일주일 전부터 나름대로 대비를 해왔다. 야간근무라서 9시까지는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아빠에게 미리 보고했고, 엄마와 일정을 상의해 이틀 전 퇴근 후 같이 장을 보았다. 장을 보고 갈비의 핏물을 빼려고 큰 통을 화장실에 넣어놓자 “이걸 왜 여기다 놔”라며 짜증내는 남동생에게 제삿날 집에 언제 올 수 있을지나 말하라고 면박을 주었다. 남동생은 10시까지는 운영하는 가게를 일찍 마감하고 오겠다고 단톡에 글을 올렸고, 막내는 저녁에 학원에서 공부가 끝나는대로 아빠가 데리러 가기로 했다. 제사 당일 혜유는 평소보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려, 에너지를 비축하려 노력했다. 평소보다 여유롭게 점심을 먹으면서 혜유는 ‘제사 끝나고, 식사하고, 제기 치우고 나면 새벽 3시쯤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내일 오전에 반차를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야간근무를 준비하던 중에 혜유는 엄마가 가족 단체 메신저방에 올린 아빠가 전을 부치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엄마는 천주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한 후 제사를 지내지는 않고 며느리로써 참여만 했다. 김장을 할 때도 배추를 직접 절이고 좋은 고춧가루를 공수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던 엄마는 제사상을 차릴 때도 하나부터 열까지 공을 들였다. 그런 엄마에게 이제는 다 사서한다고 설득했지만, 유치원 급식조리사인 엄마는 제사음식은 정성이라며 종교와 별개로 산 음식을 올릴 수는 없다고 했다. 혜유는 언젠가부터 군말 없이 전을 부치기 위해 재료를 손질하고 팬을 달군 후 망설임 없이 기름을 부었다. 혜유가 제사를 좋아해서나 포기해서는 아니었다. 주장해도 바뀌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주장하는 아이로 남았을 뿐이었다. 큰집에서 모든 일가친척이 전부 모이던 제사가 이렇게 각 식구마다 지내기로 합의가 되는데 시간이 걸린 것처럼, 목소리가 전해지기까지 상황을 따를 뿐이었다.

  혜유가 향을 사러 뛰쳐나온 건 막 제사를 치르려던 참이었다. 상에 음식을 다 올리고, 아빠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진액자를 가지고 나온 뒤였다. 액자 옆에 촛대만 있어서 양초를 찾는데 2개여야 할 양초가 늘 보관하던 함에 하나 밖에 없어서 혜유는 한 차례 놀랐다. 엄마의 성상과 이콘 장식 사이에 성물처럼 있는 양초 하나를 발견하고 한숨을 돌린 뒤, 막내가 "쌀에 꽂는 거 뭐지?"라고 물어 혜유는 다시 바짝 긴장했다. 문득 '양초와 향은 같이 보관해뒀는데 왜 함에는 양초 하나밖에 없었지?'라는 생각이 들자 혜유는 팔에 닭살이 돋았다. 놀라 우두커니 서 있는 혜유를 밀치고 아빠가 “함에 있을 거 아냐, 찾아봐”라며 막내에게 지시했고, 막내는 “없는데?”라며 뚱하게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막내의 반항적인 눈빛을 무시하며 아빠가 거실에서 밥을 담고 있는 엄마를 단호하게 소환할 때, 혜유는 혹시 엄마가 향을 따로 잘 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반사적으로 “함에 없어?”라며 부엌에서 거실로 오는 동안 혜유의 손에서는 땀이 흠뻑 나기 시작했다.

  아빠의 얼굴에 살짝 분홍빛이 돌기 시작했고, 그것은 항상 집 안의 데시벨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빠가 당황을 감추기 위해 소리를 지르기 전에 무언가 해야만 하는데 떠오르는 생각이 없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아빠를 포함해 가족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들이었다. ‘향을 이 시간에 어디서 구하지? 동네 친구들에게 집에 향 좀 있냐고 물어볼까? 좀 웃긴가?’라는 생각을 하며 심각하게 메신저 창을 열고 실행에 옮길 즈음이었다. 몇 초만에 결정을 내린 아빠가 제사상에 필요한 향을 사는 것이야 말로 남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남동생에게 얼른 뛰어가서 사오라고 했고, 항상 허리가 아파서 곡소리를 내는 남동생은 못 들은 것처럼 시큰둥하게 서있었다. 그 와중에 엄마는 “지난 설날에 당신이 향이 다 오래됐다면서 버렸잖아.”라고 말하며 기어이 아빠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고, 남동생은 어디서 사오라는 거냐며 투덜대기만 할 뿐 그대로 서있기만 해서 곧 아빠에게 한 소리 들을 태세였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듯 해결될 기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 집 밖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에 기가 찬 혜유는 신발을 신고 “제가 나가서 사올게요”라고 외치고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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