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은 부러진 것이 하나 없이 반듯했다. 아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얀 쌀 위에 향을 꽂고 경건하게 제사를 거행했다. 마지막 계주 주자처럼 집에 도착해서 검은 비닐봉지를 엄마에게 내밀고 혜유는 숨을 헐떡였다. 엄마와 막내는 미소 지으며 혜유를 바라왔고, 혜유도 대답하듯 씩 웃으며 그들에게 윙크를 날렸다. 그렇게 서로 킥킥 거리고 있는데 아빠가 독절을 마치고 엄숙하게 “다음”이라고 하였다. 아빠, 삼촌 다음으로 혜유가 가운데 서서 막내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술잔을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리며 잘 타오르는 향을 바라보았다. 접음을 하는 남동생에게 고사리에 젓가락을 올려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절을 올리자 땀이 머리카락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이 보였다. 땀이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계신가요? 저희 이렇게 살고 있어요. 여전하고 무탈하게요. 두 분 좋아하시는 고사리 드시고, 저승이든 천국이든 힘 좀 써주세요.’라는 안부를 전하며 절을 했다. 유독 파란 단색의 사진배경이 푸르게 번지듯 넘실거리는 것 같았다. 왠지 할머니가 고생했다고, 제사 끝나고 로또를 사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마지막 절을 앞두고 조상들이 제사음식을 먹는 시간에 가족들은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여자들은 멀리 나가지 않고 아파트 문 앞에 앉았고, 남자들은 저 멀리 나가 담배를 피웠다. 엄마는 서 있는 혜유에게 고생했다며 삼촌에게 제사상비로 받은 돈 봉투에서 5만원을 쥐어주었다. 또 막내에게도 “상 차리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라며 5만원을 빼서 주었다. 각자 돈을 들고 세 여자는 그제야 어깨에 힘을 빼고 웃었다. 엄마가 “아까 네가 그렇게 뛰쳐나가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를 시작으로 혜유는 기회를 놓칠세라 남동생이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세팅 안 해놨어?”라고 이야기해서 기분이 나빴다고 일렀다. 그리고 혜유는 뛰어나갔을 때의 막막함과 그 막막함 뒤에 자신이 짊어지고 나왔던 눈들을 이야기했다. 아빠의 튀어나올 것 같은 눈, 귀찮은 듯 내리깔고 있던 남동생의 눈, 쇼파에 앉아 우리가족을 구경하던 삼촌의 눈, 아빠를 따라 부릅뜬 엄마의 눈,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보며 떨리고 있던 막내의 눈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엄마가 혜유의 손을 잡았고, 막내는 엄마를 따라 혜유의 다른 쪽 손을 잡았다. 혜유는 맞잡은 손을 흔들거리며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불교용품점에서 향을 사라고 했다는 이야기, 아파트 상가 매장에서 향을 파는지 몰랐는데 팔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문득 2200원에 향을 샀는데 인터넷으로 사면 더 저렴했을지 알아보려고 혜유가 휴대폰을 켰을 때 30분전쯤 ‘제사 잘 지내고 있어?’라고 남자친구가 보낸 문자를 발견했다. 한창 향을 사러갈 시간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과 남자친구가 자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혜유는 ‘이제 마무리’라고 답장을 했다. 그 후 바로 휴대폰 화면에 남자친구로 지정해놓은 프로필이 뜨자 혜유는 아파트 주차장 쪽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아빠와 삼촌, 더 멀리에서 통화를 하는 남동생, 바로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와 막내를 바라보다 슬며시 초록색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자기야, 제사 아직 안 끝났고, 마지막 한 번 남았어.”라고 하자 남자친구는 “아이고, 자기 너무 고생이다.”라고 하였고, 혜유가 다시 “이게 다 제사 때문이야.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하며 찡찡거렸다. 혀가 반토막난 것처럼 이야기하는 혜유를 보며 엄마와 여동생이 흘깃거리며 속닥거렸다. 혜유가 “뭘 봐, 내 남자친구네 집은 제사 안 지낸대.”라고 하였고, 엄마와 막내가 과장되게 환호하며 하하호호 웃었다. 아파트를 바라보니 많은 불빛들이 따뜻하게 혜유를 비추고 있었다. 혜유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오늘 제사가 무탈하게 마무리 되었다’는 뿌듯함과 ‘꿋꿋이 나아가고 있다’는 성취감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불빛들을 양초 삼아, 하늘에 별을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빛 삼아, 아빠, 엄마, 남동생, 여동생 그리고 삼촌, 하늘에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평화롭도록 누군가에게 기도했다.
끝.
2022년 8월에 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