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nwrite: 첫 번째 이름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페미니즘 관련 글을 꼭 쓰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삶이 온통 페미니즘으로 설명 가능한데 굳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거나 페미니즘과 관련한 글을 써야 하는가, 생각했다. 최근 독자 에세이 프로젝트에 글을 투고하면서 여성으로서 느낀 강박을 적어보려 한다. 처음에는 기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퇴고할수록 나의 성별에서 기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문장을 다듬는 것 이상의 도덕 강박과 논리의 완전 무결성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 같은 자기 불신이 연달아 피어올랐다. 그것은 자기 검열의 당연한 소산물이었다. 혹은 학습의 결과였다.
'여성 작가 도서 구매와 독서 가치'에 대해 적었다. 세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한 "편독"이야기라 할 수 있다. 편독의 역사는 개인사이자 나의 글인데 어느 순간 나는 중립의 위치에, 혹은 불완전한 위치에 나 자신을 세웠다. 가령 '여성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라고 쓰면 될 것을 '여성작가의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라고 썼으며, 확고한 주장을 내세워야 할 때조차 '나도 완벽하지 않지만~'으로 시작하는 글이 낭자했다. 투고 전, 국문학과 친구들에게 글을 읽혔다. 방향성을 흐리지 말고 확고한 주장을 펼칠 것을 조언받았다. 그렇게 1차 원고를 대거 수정하고 나니 곧고 딱딱한 글이 탄생했다. 불필요한 문장을 싹 지우고 마감 이틀 전부터 부랴부랴 퇴고를 거듭했다. 소삼한 마음이 슬슬 들뜬 마음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편독 속에 도사린 여성적 강박을 확인하고, 그걸 지우는 데 열중했다. 조금 덜 논리적이더라도, 강퍅하더라도 그게 나인 것은 별 수 없는 것인데 인정할 수 없었다. 내 글이 썩 괜찮다고 생각해야 했지만, 그것은 스스로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글이 내 손을 떠났고, 마침내 물성을 가진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 그제야 해탈에 가까운 안도감이 들었다. 서평만 200편에 달하는 글을 썼지만 여성이면서도 나 자신인 글쓰기는 고단하고 어려웠다. 지치지 않고 쓰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 불편해서 심사가 뒤틀릴만한 글을 쓰고 싶다. 요즘 READ N WRITE의 리뷰가 한두 개씩 보인다. 들뜬 마음으로 읽다가 이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의 개인적인 글을 통해 소신을 읽는 사람들, 기꺼이 동참하려는 움직임, 조금씩 공감하는 마음이 무척 소중하다. 그 고마움이 나의 실존을, 흔들리는 소신을 견고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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