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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김창열

by 혜윰


작년 이맘때쯤 한강 작가가 노벨상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 『소년이 온다』나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글은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그림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 이를 만났다. 그는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이다. 그는 생존에 말했다.


“내게 그림은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행위이다.”


그의 서사를 쫓다 보니 그가 왜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KakaoTalk_20251101_164511536_10.jpg <김창열 화가의 모습>



그는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났다. 서예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에게 붓글씨 배웠고, 고등학생 때 외삼촌에게서 데생을 배웠다. 15세에 홀로 남하하여 16세에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검정고시로 1949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6․25가 터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경찰관이던 아버지의 조언으로 경찰전문학교에 들어갔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대에 복학하려 했지만, 월북한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 다녔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등록이 거부되었다. 그대로 경찰직에 눌러앉았고 경찰전문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경찰 신조>라는 잡지의 표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1955년 고등학교 교사 자격 검정시험에 합격해 짧은 시간 미술 교사로 일했다.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앵포르멜 운동을 이끌었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친구를 떠나보냈고, 아픔은 그의 내면에 깊이 박혀 예술 세계에 진한 영향을 끼쳤다. 마음의 상처를 총알 자국과 탱크의 흔적으로 캔버스에 형상화했다. 그가 초기에 표현한 <제사>라는 연작은 그렇게 떠나보낸 친구들을 위로하는 그만의 표현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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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1965년, 스승 김환기 작가의 권유로 록펠로 재단의 지원을 받으면서 뉴욕으로 건너갔다. 4달러를 가지고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앵포르멜 기법은 그곳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고 그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이런 고립감이 작품에 변화를 불러왔다. 총알 자국을 형상화한 구멍이 응고되고 추상적으로 바뀌어 갔다. 김환기 작가처럼 넥타이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는데 넥타이를 만들며 익힌 스프레이와 스텐실 기법을 작품에 활용했다. 이때 작업한 것이 <현상> 연작이다.

기존의 <제사> 연작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색채는 화려해졌지만, 개인적으로 차갑고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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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그린 추상적 작품들>




뉴욕에서 4년 정도 지내다 파리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때 만들어진 <현상>은 기존의 작품과 달리 차가운 기하학적 형태가 녹아내리듯 바뀌었다. <제전> 이라는 작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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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제전>, <제전>



파리에서 그는 마구간을 공방으로 쓰던 한 독일 조각가에게 작업실을 이어받아 사용하며 이때 아내 마르틴 질롱을 만나 함께 생활했다. 하루는 재료를 살 돈이 없었던 그가 물감을 떼어 재사용하기 위해 캔버스에 물을 뿌려놓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이 햇살에 빛나는 모습에 그는 존재의 충일감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물방울>이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1971년 최초로 그린 <물방울> 작품이 이번 전시회에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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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이후 그의 작품은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1975년 다락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신문, ‘르 피가로’에 물방울을 그리면서였다. 문자와 물방울을 접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릴 때 배웠던 천자문을 화폭에 도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자를 찍어서 또렷하게 표현하다가 나중에는 글자 위에 글자를 덧씌우며 형태를 흐리게 하거나 지워나가기도 했다. 이것이 <회귀> 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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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김창열 작가의 이번 회고전은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의 네 주제로 나뉜다. 초기부터 말년까지 그의 작품 변화를 두루 감상할 수 있다.


기존에 그의 작품 한두 점을 다른 전시회에서 본 적이 있다. 그때는 그의 이런 서사를 알지 못했기에 그저 물방울을 잘 표현한 화가구나, 라며 지나쳤다. 이번에 도슨트의 설명과 전시장 안에서 틀어주는 영상들을 시청하며 비로소 그의 작품에 오롯이 닿을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의 진리가 새록새록 깊이 파고든 날이었다.


마지막에 그의 초기작과 말년작이 마주 보고 있는 전시실이 있다. 총탄 자국과 탱크가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 <제사>, 한자 위에 한자가 덧씌워져 글자의 형태를 온전히 가늠하기 어려운 바탕에 맺힌 단 하나의 물방울을 그린 <회귀>. <제사>는 젊은 시절, 그의 상처가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라면, 말년의 <회귀>는 그 모든 아픔과 상처가 녹아든 삶의 정수를 단 하나의 물방울로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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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회귀>


그는 물방울이 무슨 의미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물방울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애썼는데 나이가 들면서 “물방울에 무슨 의미가 있어. 그냥 물방울인 거지.”라고 말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이 그의 말년작 <회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의미를 찾아 헤매던 숱한 시간과 아픔에 몸부림치고 방황하던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삶이고 그 삶이 배어든 그림이라고. 죽은 자들을 위로하는 그의 행위는 그렇게 시간과 함께 농밀해졌다.


영상에서 노년의 그가 식사하는 장면이 나왔다. 숟가락으로 국을 뜨는 그의 오른손이 떨렸다.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그는 끝까지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들고 물방울을 그렸다. 김환기 작가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같은 작업을 끝없이 반복하는 행위. 어느 분야에서 대가를 이룬 사람은 그런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나를 일깨웠다. 지금 내게도 그런 노력과 열정의 담금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물방울 그리는 남자를 만나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지금 내가 헛되다고 생각하는 행위의 반복이 시간을 덧입고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가끔은 방황하고 주춤하고 스스로를 검열하며 의문을 품는 시간이 절대 쓸모없지 않다는 것을, 흔들리는 내게 그가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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