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두리 법칙

읽고 쓰는 삶

by 혜윰

‘가두리’는 바깥쪽, 가장자리를 뜻하는 '가'와 '두르다'가 합쳐진 말로, 통상 어떤 물체 겉쪽의 휘두를 언저리를 이르는 말이다. 주로 ‘가두리 양식장’처럼 수산물을 키우려고 가둬 놓는 곳을 의미할 때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수산물뿐 아니라 사실 사람에게도 ‘가두리’가 필요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공감할 것이다. 아이가 배밀이를 하다가 혼자 앉다가 기어가기를 시작할 무렵이면 부모는 단 한순간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어느 곳을 붙잡다가 넘어질지, 굴러 떨어질지 아이의 움직임은 종잡을 수 없다. 그래서 아이를 보면서 틈틈이 일을 하기 위해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가둬두곤 한다. 이것은 물론 감금(?)이 아니고 순전히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비단 연약한 어린아이에게만 가두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가두리가 필요한 사람이다. 사람의 의지라는 것이 생각만큼, 마음먹은 만큼 강하지 않아서

나는 일을 미루는 게 일상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나와 비슷한 듯하다. ‘오늘 일은 내일의 내가!’라는 밈(Meme)이 있을 정도니.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MBTI 성향이 P에 가까운데 공무원이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내 안에 쥐꼬리만큼 머물고 있는 J를 키워 나갔다. 그래서 업무처리와 수업준비를 위해 노션(No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노션에 매일 To do list를 쓰고 실행완료하면 선을 찌익 그어 마무리를 짓는데 사실 계획한 일에 모두 선을 다 긋고 하루를 마치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다음 날로, 또 다음 날로 미룬다. 결국 마감일이 닥쳐야 마칠 때가 많다. 게으른 인간에게 그나마 ‘마감일’이 있어서 어떻게든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덕분에 마감일을 앞두고 업무 능력치가 다른 날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가두리’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나를 밀어 넣는 것!

그리고 일단 뭐든지 시작하고 발을 내딛는 것.


2024년에 접어들면서 나를 위해 가두리 몇 개를 장착했다. 첫 번째는 한국어교원자격증 2급 도전, 두 번째는 주 3회는 수업 기록 작성, 세 번째는 매일 30분씩 글쓰기.

올해 보직교사까지 맡아서 가뜩이나 정신없는 판에

이걸 다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미루지 않는 나’를 위해 과감히 도전했다. 이 중에 하나라도 성공하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두 개나 성공했다. 그나마 가두리를 만들었기에 이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레미제라블》작가 빅토르 위고는 세탁을 맡길 때 속옷까지도 모두 벗어 하인에게 주며 해질 무렵까지 가져다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옷을 다 가지고 갔기 때문에 그는 꼼짝 못 하고 방에서 글을 써야 했을 것 같다. 글을 쓸 수밖에 없도록 환경을 먼저 만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나 역시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퇴근 후 씻고 일단 노트북을 켠다. 켜 놓기라도 하면 딴짓을 하다가도 일단 뭐라도 끄적거리게 되니까. 브런치 공간도 나의 글쓰기 '가두리'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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