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습니다

독서의 힘, 영감의 샘

by 혜윰

내 기억 속 가장 오래된 책 읽기의 추억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이다. 부모님께서 새벽미사에 가시고 동생과 둘이 자다가 새벽에 일찍 깨어 엄마가 큰맘 먹고 사주신 웅진출판사 어린이 세계문학 전집을 꺼내 들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왜 하필 그 새벽에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 책 제목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나 슬픈 이야기였는지 책을 덮을 즈음에는 펑펑 울음을 쏟아내며 오열했고, 때마침 집에 돌아오신 부모님은 무슨 일이냐며 놀란 나를 달래주셨다. 그때 이후로 책은 나의 가장 좋은 벗이 되었다.


집안 형편이 녹록지 않아 집에는 세계명작전집과 위인전집 20권이 전부였지만 읽고 또 읽고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친구 집에 가면 있었던 북유럽 동화는 판타지 세계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달동네와 다름없었던 곳에 위치했던 초등학교에는 정말 작디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그곳에서 읽었던 한국고전소설 '사씨남정기'를 읽으며 조선 시대 여인의 고단한 삶에 분개했었다.

본격적으로 입시 스트레스를 받았던 중학교 6년의 시간은 책 대여점이 내 삶의 안식처였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비롯하여 미국소설, 한국순정만화를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만화 대여점이 해방구였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 몰래 읽었던 '슬램덩크'는 정말이지 인생작이었다. 강백호가 짝사랑하던 채소연에게 "정말,,, 좋아한다고요!"라고 농구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마음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나와 자리를 박차고 화장실을 가 펑펑 울었다.

등하교 소요시간이 2시간이 훌쩍 넘었던 대학시절에는 1호선 지옥철에서 인생의 참 의미를 찾아 헤매며 동양철학과 미술 서적에 탐닉했었다. 책을 읽었던 시간이 꿀처럼 달았다.


하지만 때로는 읽기의 활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특히 읽고 난 후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것 같을 때, 읽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파트리트 쥐스킨트는 그것을 ‘문학의 건망증’이라고 명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 있다. 의식 깊이 빨려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수많은 읽기의 시간 동안 내가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읽는 동안 나는 변하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나다.

그 어린 시절부터 읽어온 수많은 책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을 알기에, 나는 내가 만난 아이들에게도 읽기의 힘을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읽기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껴, 그 아이들의 삶도 읽기와 함께 만들어지길 진심으로 원한다.


2003년 교직에 처음 발을 내딛고 올해 2025년,

22년 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서툰 교사다. 여전히 수업은 어렵고, 업무도 서툴고, 사람 사이의 관계는 매번 힘들다. 경력만 늘었지 뒤돌아보면 뭐 제대로 한 것도 없이 시간만 흘러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또 읽는다. 읽다 보면 미래의 내가 또 만들어지겠지!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문유석 작가님의 <쾌락독서>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커피 두 잔 값으로
타인의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조각을 엿보는 것이다.


타인의 가장 빛나는 조각을 내 삶에도 이식하기 위해, 어제보다 조금 덜 서툰 교사와 부모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집어든다.

keyword